[통일칼럼] 전태일과 노동현실
2020/11/21 15:2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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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표 목사(한신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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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50년 전 평화시장 통일사 미싱사의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 열사는 당시의 800만에서 100만이 가까운 노동자들에 대한 열악한 산업현장을 역사와 한국사회에 고발하며 자신의 존재를 불태웠다. 어린 여공들의 지치고 병든 육신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사회 각 부분에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소리치고 호소를 하면서 각고의 노력을 다 했다. 그의 마음에는 항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십자가를 간직하고 있었다.

영혼의 구원을 설교하며 외치던 교회들은 노동자들의 억압과 착취에 대한 사회적 모순과 불의에 대해서는 침묵을 하고 무관심 했다. 창세기의 원죄는 말하고 모든 것이 운명인 것처럼 치부하고 거짓된 평화를 말하고 있었다. 박정희의 기업 중심과 소수 재벌 중심의 성장은 목표를 두었지만 노동자들의 생명이나 미래에 대한 설계는 없었다. 고향과 농촌을 버리고 이농한 노동자들은 우선 거주와 입의 풀칠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어떤 조건이나 환경이든지 참고 또 참으며 일을 해야 했다. 쉬는 날도 없고 밥 새워 잠을 미루고 일을 해도 방 하나 얻을 수도 없고 한 참 나이에 주린 배를 채울 수도 없었다. 어린 소녀 노동자들은 그렇게 열악한 산업현장에서 일 하면서도 고향의 동생들의 학자금을 대고 부모의 약값을 대야만 했다. 어린 소년 소녀 가장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희망을 접고 가족을 위하여 병들고 죽어가야 했다. 그들이 밤 새워 먹지 못하고 일하는 것은 조국의 영광과 부흥을 위해서 하는 애국의 길이었다. 자원이 부족한 대한민국에서의 경제 발전은 노동집약적인 노동자들의 삶을 억압하고 착취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전태일 청년은 이러한 답답하고 숨 막히는 노동현실을 세상에 알리고 우리도 사람이다. 기계가 아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외친 것이다. 그러나 사회 각계각층에게 갖은 방법으로 호소를 해도 거기에 관심을 갖거나 대담을 하는 반응은 없었다. 그는 삼각산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기도하였다. 하나님도 말씀이 없었다. 그러나 세미하게 조용히 주의 말씀이 들려 왔다. 처음부터 자신의 몸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일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세상도 하늘도 자신의 몸부림치는 기도에 답이 없었다. 그렇지만 하나의 응답이 최후에 찾아 온 것이다. 그것은 너 자신의 몸 전체를 노동현장과 한국 역사와 사회 속에 바치라는 것이었다. 한 인간은 소우주이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우리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 인간화를 외친 하늘의 소리였다.

 

그의 몸을 태우며 외친 기도는 이 사회 전체를 흔들어 댔다. 그것은 예수가 로마의 식민 권력과 불의한 권력을 등에 업은 매판 세력들로부터 부자비한 십자가 처형을 당한 것처럼 이 사회의 악마적인 세력들의 무관심과 멸시 천대의 불에 붙어 역사와 사회의 재물이 된 것이다. 전태일 열사가 예수는 아니다. 그러나 예수처럼 역사의 불의한 십자가에 처형된 것이다. 잠자던 학생들과 지식인들이 깨어나 이러한 열사의 몸 기도에 동참하였고 함께 몸부림치기 시작하였다. 소수 재벌 경제 정책을 실시하던 박정희의 반란 세력들은 이러한 기도의 모습을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으로 좌익 빨갱이로 몰고 갔다. 거룩한 생명의 죽음을 자살로 치부하면서 교회는 그 죽음을 모욕했다. 불의한 권력과 자본에 기대며 아부 아첨하는 교회 밥벌이 세력들은 비굴하고 비겁하게 열사의 진실을 덮어갔다. 교회들은 열사의 죽음을 자살이라 명하며 이것은 지옥에 갈 일이라고 저주하며 거짓 평화를 말하였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외면하고 부활을 신비화 하며 몸의 죽음과 몸의 부활을 내팽개치고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천국을 말하며 외면해 버렸다. 타자를 위한 삶이나 책임 연대는 없었다.

 

열사의 죽음은 운명이고 가문의 저주이며 있어서는 안 될 시대적 반역이요 못된 저항이었다. 역사의 사후에 노동운동은 들불처럼 번져 갔고 학생 노동자들이 무수히 쏟아지며 연대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교회는 방해 하고 불의한 권력의 이데올로기를 지원하며 함께 저항하는 노동자들과 학생, 깨어 가는 민중들을 좌파와 빨갱이, 간첩 등으로 몰아댔다.

 

열사가 돌아가신지 50주년이 지나간다. OECD 경제개발 협력기구 전체에서 한국은 자살률 1위이다. 여기에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률은 수 십 년간 1위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1년 남짓 되는 코로나의 희생은 4-5백에 불과 하지만 년 간 산업재해 사망은 공식적으로만 2020명이고 비공식적 통계는 이보다 4-5배 더 많다. 그러나 교회들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저 공간에 천국을 가리키며 예수님이 말씀한 너희 중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가르침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누구인들 자신의 생명에 대한 귀함을 모를까? 누군들 자신의 생명이 자신의 것만이 아님을 알지 못하는가? 예수님은 말씀 하신다. 한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다.

 

지금도 열악한 노동현실 속에서 존귀한 생명들이 집을 나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누구의 아버지요 남편이며, 누구의 형제요 자매이며, 누구의 친구이고 친척이다. 노동자들의 저임금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며 소수의 재벌과 기업들이 권력과 유착되어 부귀영화를 누려오고 있다. 촛불혁명 정부가 들어섰다. 무엇을 혁명하고 있는가? 부정과 부패와 비리, 군부 독재와 학살, 사기와 농단의 친일의 잔재와 분단 팔이, 민중 팔이, 서민과 국민 팔이 들이 자기 울타리에서 즐기고 산다. 비정규직과 코로나로 그나마 삶터를 상실한 국민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세상은 언제나 끝이 나냐? 자본과 권력의 중심에서 삶의 변두리와 주변부로 밀려나서 사는 가난하고 약한 힘없는 민중들의 삶은 언제나 상대적 박탈감을 벗어나 보나 언제나 다치지 않고, 떨어지지 않고, 깔리거나 끌려들거나 죽지 않는 노동현실을 맞을 수 있을 것인가? 힘든 노동과 생명의 위협, 상사의 갑 질로 인한 극단적인 일들이 없는 세상을 볼 것인가? 10대 경제 대국을 말하지 말고 수출 대국을 자랑하지 마라. 녿아들 2천오백 만 삼천만이 서로 함께 진정한 평등 공동체. 진정한 행복 공동체를 만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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