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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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13:31~32).

 

겨자씨는 가장 작은 씨 가운데 하나입니다. 겨자는 채소과에 해당 됩니다. 그런데 그 채소가 자라면 3미터까지도 자란다고 합니다. 나무가 3미터까지 자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채소가 3미터까지 자라는 것은 거의 보기 힘든 일입니다. 채소를 나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자라니 얼마나 확장성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천국에 대한 확장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외부로의 확장입니다.

 

17:20 이하에는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라고 나옵니다. 여기 너희 안에서 은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마음을 가리킨다면 바리새인들의 마음속에도 천국이 있다는 뜻인데 예수님을 시기하고 심지어는 죽이려고 하는 그들 안에 천국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너희 안에 있다.”는 말씀은 거기 모인 사람들 중에 있다.”는 뜻입니다. 모인 사람들 가운데는 예수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곧 예수님이 천국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목수의 아들로 구유 안에 나실 만큼 가난하고 보잘 것 없게 오셨지만, 예수님으로부터 비롯된 천국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는 물론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되었습니다(1:8). 온 세상 믿는 사람들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위하여 살았고, 지금도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둘째, 천국의 확장성은 신앙인 개인의 변화입니다. 개인의 변화에는 인격의 변화와 능력의 변화가 있습니다. 인격은 그리스도 성품에 참예하는 것을 의미하고, 능력의 변화는 각자의 소질에 은사가 덧 입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격의 변화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세상 떠날 때까지 진행되지만 은사는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에게 일어납니다. 오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능력의 변화를 상고하겠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4복음서에 모두 등장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여자와 어린 아이를 제외한 무리 오천 명도 넘는 숫자가 예수님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갑자기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들은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먹게 하소서.”(14:15)라고 말하였습니다.

 

비록 해가 저물었다고는 하지만 제자들의 이런 행동은 무례였습니다. 전능하신 예수님께서 무리의 형편을 모르실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온전히 믿고 맡기면 될 터인데 말씀 도중에 말씀을 자르고 나왔습니다. 그들은 이 사건 전에 예수님께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받아 전도 여행을 떠났던 사람들이었습니다(10:1).

 

그들이 안수기도하고, 그들이 말씀을 전하면 귀신들도 나가고 병자들도 고침 받는 일이 생겼습니다. 제자들 입장에선 상당히 신이 났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도 모르게 마음이 높아진 것입니다. 이런 상태가 아니고서야 말씀 전하시는 예수님께 말씀을 자르면서까지 나오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14:16). 이 말씀 속에는 너희들이 자신 만만해졌는데, 그렇게 자신 있으면 너희들이 능력껏 주어라.”라는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무리를 향하여 말합니다. “여기 음식을 가져오신 분 있습니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는데, 어린 아이 한 명이 벌떡 일어나더니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보리떡은 당시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준비성 있고 야무진 사람들도 음식을 갖추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음식이 그 많은 사람을 충당시키지 못할 것을 알고 내놓지 않았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처음부터 나눌 생각이 없어서 내놓지 못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믿음은 이론이 아닙니다. 앞 뒤 재지 않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어린아이가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감사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러자 어린 아이와 여자를 제외한 무리 오천 명이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을 만큼 많은 떡과 물고기가 나왔습니다.

 

어린아이가 가졌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각 개인들의 능력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개인 간의 차이는 도토리 키 재기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이미 있는 것들을 폐하기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각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주님께 드리느냐 드리지 않느냐에 있습니다. 소유의 많고 적고를 떠나 자신의 재능을 온전히 예수님께 드렸을 때, 예수님의 손에 맡겨졌을 때 주님은 그것을 변화시켜 주시고 겨자씨나 누룩에 의한 가루처럼 확장시켜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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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겨자씨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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