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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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 저녁예배 시간에 홍경호 부목사님이 설교를 하셨는데 설교 중에 하나님의 뒷마당이라는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의 고향이 강원도인데 강원도에도 뒷마당이 있었나봅니다. 그런데 어린 시절 집 앞마당에서 한참 신나게 놀고 있을 때 집안에 어르신이 오시거나 마을 손님들이 오시면 부모님이 무조건 뒷마당에 가서 놀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뒷마당은 참으로 후미지고 어둡고 쓸쓸한 곳이었지요. 홍 목사님 역시 , 우리 집에 이런 곳이 있었나싶을 정도로 어둡고 습기 차고 외로운 공터로 느껴졌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기 전에 광야라는 뒷마당으로 가게 하셨지요. 마찬가지로 본인에게도 인생에서 두 번의 뒷마당 경험이 있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첫 번째 뒷마당은 군목 생활 중에 진급을 하지 못하여 전역을 할 수밖에 없었던 뼈아픈 경험이었습니다. 그 후로도 그분의 인물이나 학벌, 설교의 능력으로 볼 때 당연히 좋은 교회의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아야 했는데 이상하게 일이 어그러지게 되어 우리교회에 부목사님으로 오시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뒷마당은 최근에 사모님께서 갑상선암이 발견되어 수술을 하게 된 일입니다. 하지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그런 뒷마당의 경험을 통해서 자신을 연단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 뒷마당이라는 말이 콱 꽂혀왔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저도 뒷마당 총회장이지 않습니까? 코로나 이전의 총회장님들은 행사가 많았습니다. 미국, 캐나다, 남미, 유럽, 일본 할 것 없이 해외 행사도 많이 초청받아 다니셨습니다. 그리고 융숭한 대접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교단 총회장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최대 연합기관인 한교총 대표회장이 되었지만 해외 한 번도 못 나가고 국내에서도 변변한 행사 한번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가장 바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사역은 앞마당 사역이 아니라 뒷마당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아무리 바쁘게 뛰어다녀도 칭찬은커녕 비난과 원망을 받기가 일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뒷마당이라는 이야기가 너무 큰 은혜가 된 것입니다.

 

저는 젊었을 때 원 없이 해외를 다녔던 사람이라 해외행사에 큰 미련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제가 교단총회장과 연합기관의 대표회장으로서 해외를 다니며 자주 주일을 비우면 우리교회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무래도 교회가 침체가 되고 영적으로 다운이 될 수가 있겠죠. 저부터도 내면세계가 황량한 사막이 될 수 있고요. 그러나 다행히 제가 뒷마당 총회장이 되어서 해외를 나가지 않기 때문에 기도와 묵상의 시간이 더 많고 주일예배와 철야기도회를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수요예배도 거의 안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한편으로는 너무나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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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저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하여 뒷마당 총회장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비록 뒷마당 사역을 한다 해도 기쁜 마음으로 앞마당 사역을 준비하고 더 넓히는 사역을 할 것입니다. 제 이후 다른 총회장과 다른 연합기관의 대표회장들이 앞마당에서 더 잘 사역하실 수 있도록 열심히 뛰고 또 뛸 것입니다. 뒷마당에서 한국교회의 앞마당을 더 넓히는 일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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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뒷마당 총회장이어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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