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하나님의 이끄심에 기댄 행복한 목회
2021/02/22 15:4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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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제일교회 이종석 목사가 말하는 삶과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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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단 한 번도 나의 모든 선택이 하나님의 계획임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내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니, 그것이 곧 길이었고, 행복이었다

 

무수한 수도권 신도시 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선호도를 보이는 경기도 용인의 광교 신도시, 경기 남부의 새로운 중심지로 자리잡은 광교는 여타 신도시가 그렇지만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한 곳 중 하나다. 그리고 바로 이 변화의 중심에는 이종석 목사가 헌신하는 광교제일교회가 있다. 광교 복음화를 목전에 둔 신도시 선교의 전진기지로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여준 광교제일교회의 역사에는 하나님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이에 본보는 오늘날의 광교제일교회를 일궈낸 이종석 목사의 삶과 신앙, 그리고 그 속에 깃든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의 간증을 소개하고자 한다.

 

목회의 기초를 배운 천호제일교회’, 그리고 김인식 목사

스스로 늘 아직 부족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남이 보기에는 꽤 쓸만한 목회자였나 보다. 총신 신대원 졸업을 앞두고 있었던 젊은 시절, 당시 서울 필동의 한민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을 하고 있었는데, 성탄절을 앞둔 어느 연말 갑자기 천호제일교회 김인식 목사의 급한 전갈을 받았다. 자신을 천호제일교회의 부교역자로 청빙하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부족한 사람에게 참으로 감사한 제안이었지만, 그는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한민교회를 떠날 수 있던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잠깐이지만 한민교회가 담임 자리가 공석이었을 때다. 부득이 내가 전도사 신분에 대신 주일예배를 이끌었는데, 내가 다른 교회로 가면 당장 이곳 예배가 힘들겠더라. 어쩔 수 없이 김인식 목사님께 정중히 거절 의사를 전했다

 

하지만 김 목사는 포기치 않았다. 계속되는 거절에도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며, 함께 사역할 것을 제안했다. “왜 나를 그토록 원하실까?”란 의문이 무르익을 때쯤, 김 목사가 이런 말을 했다. “교역자는 반드시 떠날 때가 있다. 그 때 잘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한민교회가 사정이 급한 것은 사실이지만, 엄밀히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직 학교도 졸업 못한 전도사보다는 경험 있는 전임 목회자였다. 어설프게 자신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 결국 교회를 위한 일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성도들을 위해서도 스스로 떠나야 할 때였다.

 

그렇게 천호제일교회에서 김인식 목사의 가르침 아래 목회의 기초를 닦아 나갔다. 놀라운 것은 부교역자를 대하는 김인식 목사의 소신이었다. 결코 부교역자라 해서 결코 담임보다 아래에 두지 않았고, 대우에 있어서도 최대한 비슷한 수준을 맞추려 하셨다. 1980년대에 부교역자에게 담임목사와 똑같은 크기의 사택과 차를 제공했으니, 참으로 놀랄만한 일이다.

 

목회 인생을 바꾼 친구와의 밥 한 끼

부교역자지만 주변 환경과 재정적인 부분에 있어 매우 안정적인 목회를 펼칠 수 있었던 천호제일교회는 딱히 부족할게 없었다. 오히려 너무 평온하고 안정적이어서 스스로 나태해지지 않을까 우려했던 게 유일하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그러던 중 하루아침에 그의 목회 인생을 바꾼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긴다. 이 목사의 동기 중 경기도 수원에서 자그마한 개척교회를 시작한 친구가 있었는데, 대부분의 개척교회가 그렇지만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것조차 힘든 일상이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 목사는 어느 날 수원을 찾아 친구 부부를 불러냈다. 지나는 길에 들렀다고는 했지만, 사실은 고생하는 친구에게 소고기라고 먹일 심산이었다. 그렇게 간 곳이 바로 수원에서 가장 유명한 고기집 중 하나였던 본 수원갈비였다.

 

그렇게 한참 배불리 갈비를 먹고 났을 때 쯤, 친구가 갑작스레 수원에 내려와 교회를 개척할 것을 권유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에, 처음에는 그저 지나는 농담이러니 했는데, 진지한 친구의 태도에 곰곰이 이 목사는 자신의 목회를 되돌아보게 됐다. 큰 교회에서의 안정적인 부교역자 생활이냐? 미래를 전혀 보장할 수 없는 개척교회냐? 당장 눈 앞에 개척으로 힘들어 하는 친구를 보면 답은 뻔했다. 헌데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는 곳에 하나님은 뜻을 품으시고 그 곳에 역사하신다고 했던가? 이 목사는 너무도 당연한 선택을 뒤로 하고 개척을 택했다. 누가 봐도 오답이었지만, 그저 가슴에 울리는 하나님의 이끄심을 믿었다. 망설일 것도 없다 생각한 그는 친구와 식사를 마치고 나온 직후 갈비집 건너 아파트의 상가를 계약하게 된다. 밥 한 끼 사러 수원에 내려왔다가 교회를 계약하게 된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이끄심만이 성공도 실패도 없다

그의 교회 개척 소식에 김인식 목사는 역정까지 낼 정도로 누구보다 크게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첫 개척에 가장 큰 후원자가 되어 줬다. 앞서 친구가 개척교회를 힘들게 시작했던 것처럼 자신을 바라보는 주변 목회자들 역시 그리 낙관적이지는 않았다. 대부분 과연 얼마나 오래 가겠어?”라는 미덥지 않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애초 수원과 조금의 인연도 없었다. 한국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학연, 지연, 혈연 중 뭣하나 수원과 맞닿는 게 없었다. 하지만 의심도 없었다. 어차피 하나님이 하신 일, 목회의 성공도 실패도 그 분의 계획에 맡기기로 했기에 모든 결과는 그 분의 뜻일 뿐, 그 곳에 성패는 의미가 없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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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놀랍게도 눈에 잘 띄지도 않은 상가교회는 하루가 다르게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근처 대학생은 물론이고, 심지어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서 출석하는 성도도 점점 늘어났다. 수원 동신교회(광교제일교회의 전신)의 첫 장로가 된 권혁진 장로는 개척 초기 이곳을 지나다 우연히 들러 함께 예배를 드리다 신앙의 가족이 된 케이스다.

 

믿기지 않겠지만, 우리 교회는 개척 6개월 만에 재정 자립을 넘어 지방의 어려운 교회를 도와주는 교회가 됐다. 당시 대학생들만 40~50명이 됐는데, 이들을 위해 장학금도 마련하고 정말 개척교회라고 생각키 어려운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광교제일교회의 본격 시작

승승장구하기만 할 것 같던 그의 목회 인생에 대한민국을 강타한 IMF는 새로운 시련과 도전을 동시에 줬다. 교회가 세를 살던 상가의 주인이 IMF로 교회를 비워줄 것을 통보해 왔기 때문이다. 상가교회였지만, 나름 그 지역에서 자리를 잡고 차츰 부흥을 이뤄나가던 찰나였기에 당장 막막한 것은 사실이었다. 어차피 시내 인근에 단독 예배당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안정을 위해서는 어떻게든 새로운 상가를 알아봐야 했는데 그 역시 녹녹하지 않았다.

 

당시 수원 동신교회는 IMF가 오기 몇 해 전 경기도 용인 인근에 나대지를 사놓았다. 미래를 대비한다는 생각으로 구매해 놓기는 했는데, 워낙 외진데다가 교통조차 심히 불편한 허허발판 이라 사실 그곳에 교회를 건축한다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이 목사와 장로들은 과감히 교회 건축을 강행키로 했다. 교회 사정상 건축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한 성도가 자신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건축비를 마련했다. 교회의 미래를 위한 과감한 선택이 결코 부담되지 않도록 성도들이 힘과 물질을 보탰다.

 

새 성전을 지었지만, 주변에 인구가 아예 없던 탓에 새 성도의 유입은 거의 없었다. 자동차조차 다니기 힘든 허허벌판에 누가 오려 하겠나? 근데 놀라운 것이 무엇인 줄 아는가? 수원의 성도들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이 곳으로 함께 왔다는 것이다. 눈물 날 정도로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곳은 정확히 10년 후, 대한민국 신도시의 새 역사를 쓴 광교 신도시로 거듭난다. 한때 교회 옆에서 산토끼를 잡을 정도로 시골 그 자체였던 곳이 지금은 최첨단 신도시로 으리으리한 면모를 자랑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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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 신도시를 대표하는 교회로 큰 성공을 거둔 이종석 목사에, 남들은 여러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지만, 이 목사는 결코 그런 세상적인 것들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가 감사했던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다.

 

사실 이 땅은 돈 없던 우리가 살 수 있던 유일한 곳이었다. 우리가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 아무도 없었는데, 지금은 수많은 인구가 살지 않나? 하나님이 이 모두를 계획하시고 이 곳에 우리를 보내신 것이다. 정말 우리는 그저 이끄심에 순종했을 뿐인데, 말 못할 은혜를 주셨다

 

화장실 청소? 뭐 그리 힘든 일도 아닌데

처음 한민교회를 시작으로 천호제일교회, 수원동신교회를 지나 지금의 광교제일교회로 거듭나는 동안 수많은 변화가 있었으나, 딱 하나 그의 초심은 여전히 변치 않았다. 여전히 이 목사와 사모는 틈틈이 화장실과 계단, 예배당 등을 청소하고 교회의 궂은 일을 자청해서 하고 있다.

 

딱히 놀라울 것도 없지 않나? 누구보다 교회에 내가 가장 많이 있는데, 내가 하는게 당연하다. 또 그리 힘들 것도 없다. 오히려 담임목사가 직접 청소하는 모습을 보면서, 교회에 나오시는 분도 계시더라. 더 감사한 일 아닌가?”

 

이 뿐 아니라, 그는 약속을 생명처럼 여기는 목회자다. 어떠한 경우에도 한번 맺은 약속은 결코 어김이 없다. 자신이 죽으면 꼭 장례를 모셔달라던 김인식 목사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선교로 떠난 라오스에 도착하자마자 즉시 돌아오기도 했다. 돌아올 상황이 아니었지만, 약속은 지켜야한다는 생각에 고민하지 않고, 돌아와 김 목사의 천국길을 환송했다.

 

약속에 대한 그의 신념은 그의 업무 처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법대를 나온 이 목사는 그간 총회와 노회에서 많은 일을 하며, 철저히 원리 원칙에 입각해, 일을 수행해 왔다. 그게 총회원, 노회원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길이며, 누구 하나 억울함 없는 결과를 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신념이 통했는지, 정치부장, 특별재판국원 등 수많은 일을 하는 와중에서도 단 한 번도 구설수에 오른 적이 없다.

 

하나님이 이끄심 안에 사는 삶인데, 그 분의 뜻에 어긋난 선택을 하는 것은 너무 부끄러운 일 아닌가?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사는 사람은 결코 거짓을 말할 수 없다. 앞으로도 나는 하나님의 이끄심에 기대어 그 분이 주시는 사명을 감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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