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범 칼럼]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했다.
2021/06/15 12:2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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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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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학자 몰트만 벤델은 누가복음 10장의 <마르다와 마리아>이야기를 두고 대조적인 두 타입의 여성을 대표하는 이야기로 보았다. 마르다는 적극적인 여성을, 마리아는 명상적인 혹은 소극적인 여성을 대표하는 것으로 일단 못을 박는다.

 

일반적으로 남성들은 소극적인 마리아를 선호한다.”하고 시비를 걸면서, 복음서의 저자들이 모두 남성들이었기에, 적극적인 마르다를 폄하하고, 이른바 소극적이고 여성적인 마리아를 일방적으로 높여주고 있다. ”라고 목청을 드높인다.

 

그는 말한다. 요한복음서 11장에서의 예수가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려내신 이야기에서, 마르다가 예수님에게 그렇습니다. 주님, 주님은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제가 믿습니다.”하고 고백했다는 기록을 내세우면서, 마태복음서 16장의 베드로의 그리스도 고백과 비교해서도 마르다의 고백이 훨씬 더 우월한데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남성우월주의적인 수작이고 같은 이데올로기가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잘못 이끌어가고 있다고 강변했다. (<예수 주변 여인들>)

 

, 누가복음서의 <마르다와 마리아>이야기에서, 예수가 마리아는 칭찬하고, 마르다는 나무란 것으로 그리고 있는데, 이는 마리아형의 소극적인 여성을 좋아하는 남성 누가의 속내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기록이라고 주장했다.

민중 신학자 안병무는 자신의 개인잡지 <현존> 109호에 실은 <일상성과 비일상성>에서, “누가기자는 예수의 이 방문이 예루살렘에로의 결행, 곧 수난의 도상에서 된 것으로 보도한다.” 는 전제를 깔고 해석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접대하는 일에 분주한 마르다의 행동은 일상에서는 어울리는 행동이지만, 십자가의 죽음을 앞둔 예수의 비일상적인 결단을 앞둔 시점에서는, 마리아의 행동이 평가받아야한다는 해석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마리아와 같은 소극성은, 극히 제한적인 특정상황에서만,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일지언정, 적극성이 주류가 되어야할 일상에서는 비난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누가 10장의 기록을 풀이하기 위해서는 요한 121절 이하에 등장하는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가셨다. 그 곳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에 살리신 나사로가 사는 곳이다.....”로이어지는 이야기를 덧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소위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로 알려지고 있는 이야기에서 누가가 의도적으로 생략했거나 무시해버린 기록이라고 믿는 콘텐츠를 다른 복음서에서 이끌어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기자의 기록의도와는 아주 다른 멋진 해석이라기보다는 나름대로의 개작을 선보인 셈이다.

신학자들이야 어떻게 둘러대고 무엇을 갖다 붙인들 그들의 소신을 주장할 수 있으면 그만일지 모른다. 그러나 설교꾼은 그게 쉽지 않다. 심정적인 거부감을 어쩔 수 없기 때문이리라.

 

이 이야기를 <마르다의 고백>이라 읽으면 어떨까 싶다. 이 이야기를, 복음서 기자에게 들려준 장본인이 누구였을까 하고 생각해보면서 얻어진 결론이라고나 할까. 물론 전승으로 전달되었어도 종자이야기가 있었을 테니 말이다.

 

다시 말해서 마르다가 훗날 처음교회의 리더로 활약하게 되었을 때, 마르다는 자주 그 때 있었던 일을 회상했을 뿐만 아니라, 뉘우치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교인들 앞에서 고백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제삼자가 객관적인 눈으로 관찰해서이거나, 아니면 동생 마리아가 자랑삼아 전해 준 이야기가 아니라, 마르다 자신이 그 때 예수에게서 나무람의 말씀을 듣게 된 경위를 솔직하고 겸손하게, 당시의 교인들에게 이야기한 것이, 전승이 되어 전해졌고, 그것이 누가 기자의 손에 들어간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아르베르 카뮈의 소설 <전락>에서, 주인공 크래망스가 자신의 허위의식과 위선에 대해서 솔직히 고백한 다음 청중들에게 말한다. “여러분은 나의 고백을 하나의 그림을 보듯이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 이야기가 그림일까요? 그림이 아니라, 거울일지도 모릅니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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