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채워주시는 하나님’
2021/09/18 18:2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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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률 목사 (신촌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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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한 자의 아들 중에 삼백 세겔 중 되는 놋창을 들고 새 칼을 찬 이스비브놉이 다윗을 죽이려 하므로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그 블레셋 사람을 쳐 죽이니 다윗의 종자들이 다윗에게 맹세하여 가로되 왕은 다시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하니라.”(삼하21:16~17).

 

이 말씀은 사무엘하 중에서도 하단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윗의 노년에 기록된 말씀이 아닙니다. 다윗의 집권 초기 아직 블레셋을 전멸하지 않았을 때 행적입니다. 그 때 다윗은 여전히 혈기 왕성한 젊은 왕이었습니다. 온 이스라엘을 떨게 하고 녹게 하였던 골리앗을 죽였던 감동이 이스라엘 국민의 뇌리에 아직도 식지 않은 상태일 때였습니다.

 

어린 시절 권투가 한참 인기였을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 동네는 면소재지에서도 1킬로는 더 들어가야 나오는 산골이었습니다. 나보다 세살 더 많은 골목대장은 틈만 나면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잔디가 잘 조성된 산속 묘지로 가서 우리들에게 권투시합을 시켰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돌려가며 글러브를 끼면서 우리는 경기를 벌였습니다. 당시 소년들의 영웅은 세계 챔피언이었고,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챔피언을 꿈꿨던 시대였습니다.

 

텔레비전을 소유하고 있는 집이 드물던 때라 세계 타이틀이 있는 날이면 동네 사람들은 지금의 영화관처럼 이장 댁에 눌러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하였습니다. 어느 날 절대 패하지 않을 줄 알았던 한 챔피언이 일본 선수에게 KO패당하고 벨트를 빼앗긴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영웅이 무너진 날이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뒤척거리다가 밤을 꼴딱 보내고 말았습니다. 그 때 받은 충격은 그 이후에도 최소 한 달 이상 지속되었습니다.

 

다윗은 당시 젊은 나이였고 소년 시절에 벌써 블레셋의 최고 장수 골리앗을 죽였던 영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런 다윗을 불사조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하루는 다윗이 블레셋과 싸움에서 진두지휘하더니 장대한 자의 아들 이스비브놉과 일대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스비브놉이 비록 무소불위할지라도 다윗에게는 적수가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보다 강한 골리앗을 소년 때 물리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이스비브놉에게 코너에 몰리더니 구록키 상태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영웅이 죽을 형편에 놓인 것입니다.

 

이 때 아비새가 나타났습니다. 형 요압에 가려 애송이로 치부됐던 아비새는 다윗 곁으로 와서 이스비브놉을 거뜬히 해치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다윗에게 다시는 싸우지 말라고 합니다. 전쟁 일선에서 은퇴하라고 합니다. 싸움이라면 최고라고 자부했는데, 아직도 젊은 나이인데, 비록 다윗을 귀중히 여기는 입장에서 한 말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초라하게 생각되었을지 모릅니다.

 

하루는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싸워 이기고 돌아오는 중이었습니다. 물론 그 자리는 다윗도 있었습니다. 그 때 여인들이 소고 치며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삼상18:7). 이 말에 심히 불쾌해진 사울은 즉시 반응합니다. “내게는 천천만 돌리고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더 있겠느냐?” 하며 이 날부터 다윗을 주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흘려보내면 될 한 소절을 마음에 담아 둔 것은 노래를 따라 부르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에 가시를 찾고 독을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여인들은 애초부터 그 노래에 독을 섞지 않았지만 사울은 독한 시기심으로 노래를 재해석한 것입니다. 다음날부터 다윗을 죽일 기회만 엿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십 년이 다 되어서 그가 죽이려 했던 다윗은 살아있고, 그와 그의 아들들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다윗과 분명하게 차이점을 보입니다. 그가 왕이 된 것은 능력이 뛰어나 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작게 여겼기 때문이었는데, 그는 여인들에게 큰 자로 인정받지 못한 것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반면 다윗은 혼자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위태위태한 상황에서 그를 건져준 아비새를, 사울이 자신보다 나은 신하를 인정하지 못한 것과는 달리, 시기하거나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모습이 외부로 퍼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입단속을 시키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약한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애초부터 자신이 싸워 이겼다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이기게 해주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삼상17:37).

 

하나님은 사울처럼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은 계속 어려움을 맛보게 합니다. 사울 생전 여러 차례 블레셋과 싸워 패하게 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반면 다윗처럼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낮추는 사람은 보존하십니다. 그가 위험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약함을 채울 수 있는 여러 용사들을 보낸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후로 블레셋과 전투에서 다윗이 앞서 나가 싸웠다는 말씀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자신보다 더 능한 사람이 진두에 서도록 양보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 자신의 무능함을 보게 하십니다. 그럴 때 실망하거나 좌절 할 것이 아니라 낮아져서 순히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의 강함이 되어 풍족하게 우리의 부족을 채워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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