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다윗의 의’
2021/10/13 18:0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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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률 목사 (신촌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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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좇아 갚으셨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을 행하여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삼하22:21,22)

 

다윗의 이 시에서는 그의 의로움 때문에 그가 하나님께 상을 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어떤 아버지와 아들이 버스를 타고 여행 중이었습니다. 한참을 가다가 아들이 덥다며 창문을 열려고 하였습니다. 힘껏 당겼지만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 때 이를 지켜본 아버지가 아들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개 힘껏 당겼습니다. 그러자 지체 없이 창문이 열렸습니다. 그 창문은 누가 연 것일까요?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 크게 감동 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삼상16:13). 성령의 감동이란 하나님의 능력이 감동을 입은 사람에게 덧입혀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기름 부음을 받은 다윗은 그 때부터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비록 아들의 손을 빌렸지만 실제 창문을 연 사람은 아버지였듯이 다윗이 의롭게 행한 것은 자신의 의가 아닌 성령의 능력이었던 것입니다.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자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에 이르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다고 하였습니다(왕상18:46). 이처럼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옵니다. 엘리야 같은 경우 허리를 동이고 달려갈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다윗에게는 육신의 지혜를 따라 살아가는 사울이, 쩔쩔매는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다윗은 그를 괴롭히는 사울을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주어졌지만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가로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그리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을 인하여 다윗의 마음이 찔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는 자가 됨이니라 하고”(삼상24:4~7).

 

자신의 의로운 마음으로 그를 괴롭히는 사울을 살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울 치는 것을 금하셨기 때문입니다. 결코 그의 능력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한 번은 그가 사울을 피하여 숨어 있을 때, 나발이라는 심히 부한 사람의 목장이 다윗과 그 부하들의 도피처에 있었습니다. 도피 생활은 정착 생활에 비하여 의식주 문제 해결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약탈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나발의 가축에 조금도 손을 대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가축들의 담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러한 점을 들어 나발이 양털을 깎는다고 했을 때(양털을 깎을 때면 잔치도 함께 있음), 다윗은 부하들을 시켜 나발에게 음식을 달라고 정중히 부탁하였습니다. 하지만 나발은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을 뿐 아니라, 오히려 다윗이 주인을 배반하였다며 모욕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에 화가 난 다윗은 나발과 그에게 속한 모든 남자를 없앨 작정이었습니다. 사환들과 함께 칼을 차고 나발에게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 때 나발의 부인 아비가일이 와서 다윗이 나발에게 요구한 것 이상 되게 준비하고 그의 범죄를 막았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날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케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날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보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삼상25:32~33). 아비가일이 다윗의 범죄를 막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막아주신 것입니다. 다윗이 의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을 의롭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내버려 두었을 때, 그는 어느 왕보다 음란하고 교활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 사건을 숨기기 위하여 우리아를 맹렬한 전쟁에 선두로 나가게 하여 죽게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또 영토가 확장 되고 인구가 많아지자 교만해졌고, 사탄은 그를 충동하여 자신의 명예를 위하여 이스라엘 인구조사를 하게 하였습니다(대상21:1). 하나님께서 잠시 다윗을 내버려둔 것입니다. 그 결과 7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아니하고 사탄이 함께 하니까 그런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다윗의 의로움은 그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성령이 그와 함께 계셔서 한 것입니다. 다윗만 아니라, 요셉 역시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결과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을 해도 죄를 짓지 아니할 수 있었고, 자기를 애굽에 팔아넘긴 형님들에게 복수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본래 훼방자요 핍박자요 폭행자였지만(딤전1:13), 예수님을 위하여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고전15:10).

 

이처럼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면 악을 조금도 행하지 못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고후13:7), 수고 또한 많이 하게 합니다. 요한도 이와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3:9). 하나님의 씨가 있는 사람은 죄를 범치 못합니다. 죄를 끔찍하게 생각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실족하지 않게 막아주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의가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된 것처럼, 오늘날 신앙인들의 의 역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사람이 의롭게 살아가는 것 또한 성령의 도움 없이는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혹 자신에게서 선이 나올지라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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