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규 박사의 한국교회사가 열전] 윤춘병 목사(1918-2017)
2021/10/17 16:1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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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규 박사(서울교회사 연구소장/ 대신대 전 한국교회사 교수)

'한국감리교사학회' 창립 등 감리교를 사랑한 감리교회 사가

동요 '어머님 은혜' '살랑살랑 실바람을 잡아 타고서' 등 문학작품도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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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남도 중화군 장로교 집안에서 출생

윤춘병(尹春炳) 목사는 평안남도 중화군 양정면 신대리의 장로교회 장로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마을은 대동강 연안으로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마을이었다. 그는 이런 풍광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그의 성격은 성직자적인 온순하고 유순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그의 부친은 '아이생활' '별나라' 같은 잡지를 사다 주었다.

 

그는 이런 신앙적 분위기와 자연적인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후에 여러 편의 주옥같은 문학작품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동요 <어머님 은혜>, 1946년 고향을 떠나 경성의 조선신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지은 노랫말이다. 후일 어느 날 객지에 나와 학교 기숙사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외로이 누워있을 때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작품이었다고 술회했다. 당시 교회에서는 어린이 찬송가가 없었을 때인데, 하나님을 향한 깨끗한 영혼과 어린이에 대한 따듯한 사랑이 언제나 그로 하여금 이처럼 아름다운 동시와 동화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일제 말엽에 평양에서 '요한신학교'에 다니다가 일제의 횡포가 심해지자 1942년 만주로 건너가 지내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1945년 해방을 맞았다. 이후 고향을 떠나 전영택 목사와 함께 서울로 와 신학교를 마치고 충남 아산에서 첫 목회를 시작했고, 후에 천안, 철원, 제주도, 의정부, 원주 등지에서 사역을 하였다. 그의 목회신조는 "내 생활은 내 스스로 창조한다"였다. 그래서 그는 늘 큰 교회보다는 작은 교회로 가기로 목표하고 살았으며, 타인이 다 이룩해 놓은 곳에 안주하기보다는 내가 창조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는 곳을 찾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이렇게 40여년 간의 목회 여정을 이어갔다.

 

고서(古書) 및 기독교 역사 자료 수집 체계화

그는 목회사역을 하면서 여러 지방을 옮겨다니며 그 지역에 있는 고서점을 드나들기 시작하였는데, 목회현장에서 듣고 보기만 했던 기독교 관계 옛 책(古書)들이 눈이 띄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고서를 수집하고 저술활동을 하면서 여러가지 역사자료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최남선의 '백팔번뇌'를 비롯, 1960년대 이전의 국내외 시집과 문학에 연관된 집필자료들을 모으면서 자연히 교회역사 관련 자료들도 모으기 시작하였다. 1895년 출간된 <천로역정> 원본, 신사참배시 법원에서 간행된 목사들에 대한 심문 취재 기록 <만민특위자료>, 만국부인회 기도회 사건 관련 기록(36), 감리교 선교 월간지 <KOREAN Misson Field>(36) . 이외에도 개화기의 교회 관련 자료들을 미국, 일본 등지로부터 구입하거나 입수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는 이런 자료들을 수집하면서 자신이 일선 목회에서 물러난 이후에 할 일이 감리교회 역사정리 사업이라는 계획을 세우게 되기에 이르렀다. 그는 이 즈음에 감리교회 내외에 교수들과 신학자들과 손을 잡고 '한국감리교사학회'를 조직했다. 함께 한 동인들로서는 송길성 김흥수 이진호 이덕주 등이었고,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감리교회 외국인 선교사> <한국선교의 문을 연 매클레이 박사의 생애와 사업> <한국기독교 신문. 잡지 100년사> <8.15 이후 감리교 서부연회 수난사> 등을 정리 간행하였으며, <감리교백년사대계>(1992)를 출간했다. 이 뿐만 아니라, 그는 목회를 하면서도 자신이 재직하였거나 재직 당시 교회의 역사를 열심히 정리해 간행하였다. 의정부제일교회사, 원주제일감리교회 90년사, 제주감리교회사, 동대문감리교회 100년사 등이 있다.

 

감리교를 사랑하고, 한국교회를 사랑한 한국교회 사가(史家)

윤춘병 목사가 신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국내 어느 신학교에서도 한국교회사(韓國敎會史)란 과목이 없었을 때여서 한국교회의 역사의 중요성을 특별히 의식하고 있거나 가르치는 자가 없었다. 그는 스스로 자료를 섭렵하고 정리하게 되었고, 교회역사의 중요성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는 원주제일교회 재직시 감리교 동부연회 제1대 감독으로 피선되어 리더십의 끝자리에 오르는 영광을 얻기도 하였다(감독들의 이야기, 홍성현 편, 기감감독협의회 2007, p.218). 은퇴 후엔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교수로서 가르치며 학교 부설기관으로 자신이 평생 수집한 한국교회사 관계 자료를 기초로 설립한 '기독교 역사 자료관' 관장으로 봉사하며 후학 양성에 매진했다.

 

그는 전국 어느 곳이든 교회 관계 중요 자료가 있다는 정보만 전해지면 수 백리를 마다하지 아니하고 달려갔다. 자료가 있는 곳에 역사가 있고, 자료가 정리되면 역사가 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19855월 경상북도 경산시에서 사역하고 있는 필자(박정규)'대구교회사연구소'를 예고도 없이 내방하여 나의 서재에서 한국교회 역사에 관한 대화를 나눈 일이 있다. 훤칠한 키에 안경을 쓴 노신사의 첫 인상이 지금도 생생하게 추억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감리교회를 사랑하고, 한국교회를 사랑하고, 역사의 중요성을 가슴에 지니고 살아가는 한국교회의 산증인이었던 것이다. 윤춘병 목사는 목회자요, 동요 동화 작가요, 한국교회 역사를 위해 헌신하며 감리교회를 사랑한 한국 감리교회사가(監理敎會史家)였다.

 

결론적으로 윤춘병 감독의 한 생애는 처음엔 <어머님 은혜><살랑살랑 실바람을 잡아 타고서> 같은 주옥같은 동요 작가였던 그는 1945년 해방 직후 공산주의자들의 기독교 탄압을 피해 평남 중화에 가족들을 남기고 단신 월남해, 3년 후쯤 당시의 유행성 말라리아 열병에 걸려 사경을 헤맬 때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시로 썼고, 이 시에 한국교회음악의 선구자 박재훈 선생이 곡을 붙여 오늘날까지 애창되고 있는 명곡이 탄생되었다.

 

그는 1978년엔 감리교 동부연회 감독에 올랐으며, 감리교신학대학의 교수로 후학을 가르치기도 하였고, 목회일선에서 은퇴하면서 평생 모으고 수집한 최초의 신학잡지 <신학월보><신학지남><가뎡잡지><교회> 등 자신이 평생 수집한 역사자료를 대학에 기증, 감리교신학대학교 부설 역사자료관을 세우고 초대관장으로 주님의 부름을 받은 201758일까지 봉사하였다. 그는 진실한 감리교회 목사로, 열정적인 감리교회 사가로 일생을 살다간 주님의 종이었다.

 

<어머님 은혜/윤춘병 작사, 박재훈 작곡>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푸른 하늘 그 보다도 높은 것 같애//

 

넓고 넓은 바다라고 말들 하지만/나는 나는 넓은 게 또 하나 있지/사람되라 이르시는 어머님 은혜/푸른 바다 그 보다도 넓은 것 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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