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구도자는 길을 간다

한 해의 시작에 즈음하여 한 해의 여정(旅程)으로 살아가는 삶의 노선(路線)을 생각해 보면서 우리는 구도자(求道者)인가 방랑자인가? 아니면 지혜자인가 어리석은 사람인가? 하는 물음을 묻는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있는 신앙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알고 신앙하며 삶을 고백하고 살아 가는가? 하는 물음에서 이 말씀을 생각하게 한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내가 가는 그 곳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에 도마가 예수님께 말했다.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하는데 저희가 그 길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바로 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
여행하는 일정에는 반드시 길을 찾아가는 노선(路線)이 있다. 자동차에는 찻길이 있고 선박에도 뱃길이 있으며 항공기에도 항로가 있듯이 인생의 삶의 길에도 노선이 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의 길이 있다. 구도자(求道者)는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삶을 깊이 깨달아 경지나 이치를 깨우침에서 삶의 길을 가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희망의 신학자 몰트만은 '메시아적 차원'의 '그리스도론'을 출판 하면서 그의 책 제목을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는 이 책의 제목이 나오기 전까지 많은 제목을 생각했다. 그리하여 제목을 선정하는데 '그리스도 - 세계의 희망'으로도 생각해 보고 '그리스도 - 장차오실 분'으로도 생각하였으며 '도상의 그리스도' 또한 '되어감 속에 있는 그리스도'라 생각하여 보았다. 이는 몰트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어떤 면에서 다루고자 함을 알게 한다. 몰트만은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나 본질을 말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하나님과 세계의 역사 과정 속에서 그리스도를 알게 함에 있음을 안다. 즉 그는 역사 갈등의 도상에 있으며 방향을 찾고 있는 인간을 위한 그리스도론에 초점을 맞추어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예수의 삶이 진행 중이며 과정이며 어디로 가는 향방을 알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리스도론을 상징으로 '길'이라 한다. 길 이란 완성에 도달하여 있는 것이 아니고 목표에 도달하였음을 의미하지도 않았기에 이 길의 방향을 알게 하는 그 노선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의 길 이야기는 탄생, 십자가, 부활, 다시 오심(재림)에 이르기 까지 그리스도의 여정의 노선, 그리스도의 길을 알게 한다. 그 길은 역사적 여정만을 의미하지 않고 동시에 공간적 개념으로 그 길을 알게 한다. 이 '그리스도의 길'은 모든 '인간의 그리스도론이 지닌 역사적 제한성'을 의식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믿음의 그리스도론으로 알게 하려 함이다. 예수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은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정말 믿는가? 그렇다면 이의 길을 따라 가는 것이다. 이 그리스도론은 살아있는 신앙으로 삶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인생의 삶은 길을 가는 것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이유가 있다. 그냥 태어나 마냥 사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는 것 자체가 삶의 의미가 없다면 산다는 것 그것도 헛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몸 속으로 들어오기 이전에 존재했던 상태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에 생각하게 된다. 삶이란 육체적 삶에서 자신의 역할을 회복하는 삶이라 할 것이다. 인간은 적지 않는 삶을 거듭한 후에야 이 상태에 이른다. 여기서 인생은 사람의 역할이 무엇이고 무엇을 해야 하며 얼마만큼의 시간이 주어지는 지를 알게 한다. 삶이란 이타적 요구들을 계발하는 체계이다. 여기에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를 안다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 되고 만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인간이 가는 길은 믿음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이다. 이유는 인간을 창조하신 제조자의 의도를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그 의도, 그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인간은 인간의 길이 있다. 인간이 자기의 의도에 의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오늘의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 생존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철학자나 종교가들이 설명하고 해석한다. 혹은 우연에 비기며 혹은 사주팔자에 기대며 혹은 인과 응보의 산물이라고 한다. 이는 불가지(不可知)한 일로 보는 것이다. 여기에 길을 여는 것은 믿음이라는 영적인 의미를 안고 지식을 넘어 믿음이라는 길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존재에는 나의 뜻이 아닌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아는 것이다. 이를 아는 것은 삶이란 나의 판단과 나의 결심과 나의 계획과 나의 책임하에 내가 나 된 것이 아님을 알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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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자는 길을 간다 - 배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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