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고난의 믿음 - 배성산목사
2014/04/03 15:0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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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만을 요구하는 현대 자본주의가 생산해 낸 교회의 자본화와 그리스도인의 삶이 갖는 성화(聖化)대신 평안과 행복만을 추구하는 오염된 믿음을 보면서 교회가 인간적인 방법으로 교회부흥을 기획하지만 사실은 성령이 메마른 교회가 되어 가고 교인 수의 증가를 위한 비즈니스적인 사업만으로 성장을 도입한 회개를 모르는 그리스도의 삶의 신앙체험으로 길들어 가고 있음을 본다. 더구나 신학이 없는 믿음과 죽은 교리와 정통만을 간직한 채 하나님을 만난 뜨거운 감격이 없는 믿음으로 전락한 현 시대의 믿음의 허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신앙인들은 평안과 안일만을 추구하고 세상의 축복 일색으로 믿음이 길들어 가고 있다. 이러한 믿음의 풍토로 기성화 되어 가고 있음에 참 믿음의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갖는다.

그리스도인의 고난의 믿음


물질만을 요구하는 현대 자본주의가 생산해 낸 교회의 자본화와 그리스도인의 삶이 갖는 성화(聖化)대신 평안과 행복만을 추구하는 오염된 믿음을 보면서 교회가 인간적인 방법으로 교회부흥을 기획하지만 사실은 성령이 메마른 교회가 되어 가고 교인 수의 증가를 위한 비즈니스적인 사업만으로 성장을 도입한 회개를 모르는 그리스도의 삶의 신앙체험으로 길들어 가고 있음을 본다. 더구나 신학이 없는 믿음과 죽은 교리와 정통만을 간직한 채 하나님을 만난 뜨거운 감격이 없는 믿음으로 전락한 현 시대의 믿음의 허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신앙인들은 평안과 안일만을 추구하고 세상의 축복 일색으로 믿음이 길들어 가고 있다. 이러한 믿음의 풍토로 기성화 되어 가고 있음에 참 믿음의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갖는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삶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믿음의 역설(逆說)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생활에서 신앙인의 삶은 어디에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신앙이 전혀 다르게 나타남을 알게 한다. 우리가 사진을 찍을 때 저 높은 곳에서 아래를 조망할 때와 엎드려 낮은 각도에서 셔터를 누를 때 전혀 다른 사진이 찍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기준이 어디냐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한다.
우리의 삶도 그 기준이 어디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삶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러한 역설을 몸으로 친히 실천해 보이시는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자기를 따르라고 말씀 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하신다. 이것은 믿음이 횡재(橫財)가 아니고 십자가의 고난의 모험을 강행하는 것임을 알게 한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믿음에는 관심이 없고 횡재적인 안일과 평안만을 위주로 축복을 바라며 살아간다. 이것은 믿음의 온실에서만 만들어지는 허약하고 철이 들지 않는 요행적 믿음만을 꿈꾸게 한다. 이러한 교회들은 연약한 그리스도인들로 가득하다. 교회는 무엇인가 보여주고 달콤하고 재미있는 것으로 해 주어야만 교회에 나오는 것으로 이해하고 사업을 발전하고 성공만을 위하여 모든 재능을 기능적으로 이용하는데 골몰하는 것이다. 의를 위하여 죄를 미워하고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해야 하며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악한 일을 하지 않아야 함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과거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은 복음이나 진리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복음을 증거 하다가 죽어간 분들이다. 오늘날 교회 주변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벗어나고 비껴가는 요행을 바라는 믿음의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음을 본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믿음의 역설을 알게 한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그리고 자기의 생명을 건지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위해 자기 생명을 잃은 사람은 자기 생명을 건질 것이다. 만일 이 세상을 모두 얻고도 자기를 잃거나 빼앗기면 무슨 유익이 있느냐? 누구든지 나와 내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의 영광과 거룩한 천사의 영광으로 올 때 그를 부끄러워 할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의 고난의 믿음”이 무엇인가를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 알게 한다.
또한 사도 바울은 누구인가? 주님을 만난 이후 하늘 삼층천까지 가서 천국을 체험한 사람이다. 그 정도의 믿음을 가진 분이셨다. 그런 바울의 믿음의 고백은 ‘나는 사도들 가운데서도 지극히 작은 자이다’, 자기를 가리켜 ‘죄인 중에 괴수라’했다. 이 엄청난 자기 비하를 보면 나 자신을 생각해 볼 때 그 신앙의 비교가 감히 헤아릴 수 없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 경지에 까지 믿음에 들어 설 수 있을까? 하는 의문만이 남게 된다. 이것은 내가 하나님을 믿을수록 나는 왜소(矮小)함을 느끼게 되고 존귀하신 하나님을 알수록 내가 얼마나 낮고 비천한가를 알게 한다. 이 경지에 들어가 보면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 되시고 사랑으로 점철된 분이심을 고백하게 되며 내가 하나님의 아들 됨을 알게 되어 그 깊은 그 사랑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에 자기 목숨까지 바칠 용기와 결단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믿음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고난의 믿음”이 진리가 되는 신앙인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고후6:10)라고 말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렇게 기독교의 진리의 진수는 성육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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