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삶에서 예수의 관심


세월호로 제주도 수학여행에 나선 안산 단원고 2학년 고교생 등 325명을 포함해서 승객 전원이 탄 여객선이 2014년 4월16일 오전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지난 6. 4 지방선거의 판도를 흔들고 있음은 그동안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에 대한 참상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 주었다. 세월호 참상사고(慘狀事故) 수습 및 대응과 관련한 정부 책임론이 확산되면서 지방선거 쟁점은 세월호를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선거 후보자들은 세월호 사고, 초기 입장을 최대한 자제했지만 정부 대응 부실이 연이어 드러나면서 ‘안전 대한민국’을 모토로 선거운동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가 선거도 이제는 끝이 났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현실은 너무 잔혹하다. 이렇게 전 국민이 함께 아픔을 겪어본 대참사도 드물것이다.
이전에도 수많은 참사와 사고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 사회 전체를 흔들어 놓은 총체적 부실의 희생이었기에 더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희생자의 상당수가 부모의 희망이었고 사회의 미래였던 젊은 청소년들이라는 사실이 더 고통스럽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무관심과 무책임한 제도들. 관행처럼 살아왔던 우리의 삶은 사회적 부실이 예고된 인재임을 말해줄 때마다 국민들의 분노와 고통은 더 커져만 갔다.
사실 우리 사회가 저 출산 시대에 접어들면서 아이들에 대한 애착과 기대가 어느 때보다 커진 사회 속에서 아이들을 한꺼번에 졸지에 잃은 부모들의 마음은 마치 모든 희망을 잃고 낙담하고 있는 예수 당시의 제자들의 모습과 유사하다. 이 고통을 남의 고통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는 대부분의 대한민국의 부모들은 이런 참사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에 큰 공감을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의 아픔은 그 아픔을 직접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안다. 삶의 가치들이 인간적인 정과 사랑보다는 물질과 돈이 우상이 되는 세상이 되면서 참된 삶은 어디로 가고 일그러져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급속히 몰려오면서 짧은 시간에 우리 사회가 눈부신 경제적 성장을 통해 삶의 량은 급속히 높아졌지만, 이를 뒷받침 해줄 삶의 정신적, 도덕적 가치들은 동반 성장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잘 사는 것은 곧 남들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이 올라가고 더 편안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남의 행복은 나의 불행이고,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인 세상이 되어버렸다. 무한 경쟁시대에 우리는 불신의 시대를 살고 있고, 우리 아이들은 경쟁 속에서 공부하는 기계가 되거나, 집단에 속하지 못하면 죽는 왕따 시대를 맞고 있다. 그래서 이번 세월호 참사 사건을 지켜보면서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나타난다는 것은 의외가 아니다. 남들의 슬픔의 본질을 보지 못하거나 남들의 희생의 가치를 상대화해서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 이른바 사회의 지도층이라고 하는 정치인들과 사태의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의 작태를 우리는6.4선거를 통해서 더 분노하는 국민들의 감정의 실마리를 풀어야 될 형편이었다.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단순히 감정적인 이입만이 아니다. 그 아픔의 실체가 결코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이성적인 사리분별이 있을 때 그 고통에 진심으로 동참할 수 있다. 이번 ‘세월호’참사를 취재한 한 외국 언론기자는 두 가지에 크게 놀랐다고 한다. 하나는 이런 후진국형 참사가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놀랍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한 마음으로 아파하면서 자발적으로 자원봉사를 일사불란하게 해내는 모습에 놀랐다는 것이다. 이는 이렇게 우리 사회의 엇박자가 일어나는 삶의 현실을 너무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이 사회의 부조리한 시스템에 분노하고 그들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생각하는 것이 되어있는 현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또한 일부 정치인들이나 이 사태의 책임자들은 국민들이 빨리 이 사건을 잊고 다시 “대한민국”을 연호(連(呼)할 날을 기다릴지도 모른다. 이는 냄비근성의 한국인이라고 자조섞인 표현을 써가면서 또 다시 시간 속에 우리 희생자들을 물속에 영원히 묻어둘 지도 모른다. “다 지난 것이니 그대로 덮고 평정심을 찾자”라는 말로 정의와 원칙을 무너뜨리는 오늘의 우리 사회를 보면서 “그냥 참고 살자”라는 태도는 마치 썩은 내가 진동하는 사회를 “그냥 우리가 코를 막고 살자”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이러한 세상살이를 보는 기독교인이라면 알아야 할 것은, 죄를 덮고가는 것은 결코 성서적이 아니라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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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예수의 관심 - 배성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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