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사니까 사는가?


“사니까 사는가” 주제는 그저 사니까 주어진 대로 사는 삶이나 맹목적으로 사는 어리석은 삶을 알게 한다. 그러나 삶이나 생명은 하늘의 도움 없이는 창조된 것은 온 우주에는 하나도 없다. 창조된 모든 것은 제조자의 의도에 따라 기능이 움직이게 된다. 그리하여 창조되어 나타나는 삶에 그 질서의 이유도 모르고 사는 생명은 “사니까 사는 것이다” 생명은 사는 것으로 창조자의 의지에 따라 삶을 움직인다.
예컨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창조주께서는 시공간을 따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맞아 시절을 따라 성장 성숙으로 열매를 거두고 씨를 남겨 또한 한 생명을 낳게 한다. 이는 연속적인 속성으로 생명의 삶의 진리를 펼친다. 여기에 우리는 ‘아! 아름다워라 찬란한 생명이요’ 하고 감탄한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의 놀라움이다. 생명. 삶, 죽음의 큰 문제를 놓고 인생의 삶은 사는 것에서 나름의 한 세상을 평생으로 산다. 거기에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와 인륜(人倫)으로 사람과 사람과의 사이에 자연적으로 생겨난 질서로 이륜(彛倫)이 있다. 그래서 이를 천륜(天倫)으로 부자(父子)의 관계를 알게하고, 형제 사이에 사랑의 약속을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로 알게 하여 서로 삶을 사랑으로 관계하게 한다.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詩) 중에서 낭만주의적인 그의 작품을 본다. 그의 시는 인생의 본질과 인간의 의식 깊숙이 자리 잡은 근원적 고독에 대한 성찰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지니…”로 시작되는 이 시를 통하여 푸시킨은 절망, 고통, 이별, 희망, 기쁨, 재회가 공존하는 삶의 본질을 받아들여 순응하지 않으면 인간은 균형을 잃고 죽음을 만나게 된다고 노래한다.
그는 개인적으로 불우한 삶을 살았던 젊은 시절 고독한 유배생활을 하면서 러시아의 역사와 민중의 생활에 대해 깊이 통찰하게 되어 인간의 본성과 삶에 대한 긍정의 태도로만 거기에 멈춘 삶을 낭만적인 자신의 문학적 시로 테마를 삼게 된다. 삶은 일상을 사는 일로서 마냥 기쁘게만 살아 갈 이유가 아니며 삶의 의미로 인간다운 삶으로 삶의 지혜를 얻어야 된다. 그러기에 삶의 일로서 새로운 삶을 되찾는 데는 내 한 목숨으로 생명을 알아야 한다.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오랜 옛날부터 관념론적인 견해와 유물론적인 견해 사이에 뿌리 깊은 대립이 있었다. 또한 여러 견해가 뒤얽혀서 생명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그러나 다양한 생물은 물질대사, 성장, 생식, 적응으로 관계의 속성으로 유기체적 관계를 이룬다. 육체를 가진 사람의 속에는 한 마음이 있다. 이는 너와 나라는 마음이 있어 마음은 근본이 같아서 서로 다르지만 뭉쳐져서 한 마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한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임을 삶에서 알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을 헤아려 보듬어 주고 너와 나의 두 마음을 같이하는 마음으로 창조주는 서로를 엉키게 하였다. 하늘의 비가 땅에 물이 되어 각기 다른 곳에서 흘러 흘러 바다에 하나로 이르듯이 인간도 그 생명이 하늘의 은총 없이는 되지를 않는다. 물이 흐르다가 여러 가지 형편에 의해 흐르지 못하고 거슬리지만 마침내는 바다에 이르듯이 사람의 마음도 탐심, 진심, 치심, 망심를 내려놓고 우여곡질 속에서도 하늘의 은총인 사랑으로 서로의 삶에서 그 이치를 깨닫게 된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생명에 관련된 말씀들을 중심으로 요한복음의 생명신앙을 보면 생명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과 성서적인 개념을 비교, 설명했으며, 로고스(말씀) 안의 생명과 그리스도 안의 생명, 생명위기의 현상과 원인, 그리고 생명회복을 위한 개인과 교회, 사회적인 대안까지를 언급한다. 생명(生命)의 위기(危機)는 어느 날 우연히 찾아온 불청객(不請客)이 아니다. 숫한 나날을 그 위기를 외치면서 경종을 울렸지만 인간은 자신의 욕망과 탐욕에 정신을 뺏겨 그 소리를 듣지 못한 것뿐이다. 인간의 삶이 선(善)할 때와 악(惡)할 때 그 용도가 달라짐은 명백하다. 선과악의 비밀이 여기에 그 실체를 드러낸다. 에덴에서 선악과를 따먹기 전의 낙원과 인간의 상태는 어떠했겠는가? 거기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하나님의 사랑이, 자연과 사람과의 사랑과 평화(平和)가 충만(充滿)했다. 인간의 약점인 죄로 인한 잘못은 생명(生命)인 사랑으로 회복(回復)하는 것이다. 무관심과 미움으로 대했던 것을 이제는 사랑의 눈으로 관심(關心)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사람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며 관심을 갖는 것이요 자연에도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고 인간의 삶에서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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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니까 사는가? - 배성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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