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죄는 사랑의 자리를 보게 한다


요즘 항간에서는 ‘뇌사 도둑에 논란’이 화제가 되고 있다. 자신의 집에 침입한 도둑을 몸싸움 도중 뇌사 상태에 빠뜨린 20대 집주인에게 징역형이 선고된 사건과 관련, 검찰이 이례적으로 입장을 밝혔다.
춘천지방검찰청 원주지청은 `속칭 ‘뇌사도둑’ 사건 보도에 대한 원주지청의 입장을 통해 “단순히 상해를 입힌 정도에서 훨씬 더 나아가 김 모(55·도둑)씨를 의식불명 상태(식물인간)에 빠뜨린 점 등을 미뤄 최 모(21·집주인)씨의 정당방위를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원주지청은 “최씨는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김씨를 제압한 후에도 10여분 동안 발로 머리를 걷어차고 빨래건조대, 허리띠로 내리치는 등 닥치는 대로 폭력을 휘둘렀다”고 설명하면서 지난 3월 최씨가 집안에 들어온 도둑 김씨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김씨가 의식불명 상태가 되자 흉기 없이 도주하려던 도둑을 과하게 폭행했다며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로 최씨를 기소하고, 8월 춘천지법 원주지원은 최 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여 여기에 ‘뇌사도둑’ 논란이 일고 있어 세간에서는 ‘뇌사도둑에 논란’이 되어 그 죄에 대한 적용이 ‘정당 행위’인지 ‘과잉행동’인지 요즘의 화제가 되고 있다.
마침 여기에 생각나는 것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알게 한다. 7월 어느 무더운 날 저녁,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는 페테르부르크의 거리를 방황하고 있었다. 그는 남에게 백해무익한 사람의 돈을 빼앗아 훌륭한 사람을 위해 쓴다는 것은 아무런 죄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터였다.
그는 신념의 실현을 위해 고리대금업자인 노파를 대상으로 삼았다. 그 노파의 돈을 빼앗아 자기의 학자금을 삼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누이동생 ‘두냐’는 자기 학비를 위해 마음에도 없는 사나이에게 몸을 파는 것이나 다름없는 결혼을 하려는 것이다. 또한 주정뱅이인 하급 공무원 ‘말메라도프’의 이야기도 한 원인이 되어, 그는 노파와 그 선량한 여동생까지 살해하고 돈을 빼앗았다. 그러나, 그 돈을 유효하게 쓰기는커녕 어딘가에 버리고 계속 양심의 가책만 받게 되었다. 판사 ‘포르피리’는 이 사건을 사상적 동기의 범죄로 보고, ‘라스콜리니코프’와 논쟁을 하면서 재판을 전개한다.
그즈음에 ‘말메라도프’가 마차에 치여 죽는 사건이 벌어지고, 그를 계기로 그의 딸 ‘소냐’와 사귀게 되었다. 정신착란증인 계모와 자기의 동생들을 위해 몸을 팔고 있는 이 아가씨한테서 살인범 '라스콜리니코프'는 구원을 갈망하게 되었다. 그리고 끝내 간접적인 고백을 한 뒤, 갑자기 그는 몸을 굽혀 방바닥에 엎드리고 그녀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라스콜리니코프’의 고백을 들은 ‘소냐’는 그에게 말한다. “이 세상은 넓지만 지금의 당신처럼 불행한 사람은 없어요, 지금 당장 네거리로 가서 당신이 더럽힌 대지에 입 맞추세요. 그리고 큰 소리로 세상사람 모두에게 들리도록 ‘나는 살인자올시다!’하고 외치세요. 그리하면 아직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구해 주실 거예요.”
마침내 ‘라스콜리니코프’는 경찰에 자수하러 간다. 경찰서로 가는 도중 ‘소냐’의 말에 따라 그는 광장에 들러 대지에 꿇어앉아 무한한 기쁨과 행복감을 느끼며 흙에 입맞춤을 한다. 그러나 아직도 자신의 죄를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소심한 성격과 어리석음에 패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형벌을 치르기 위해 시베리아로 가는데, ‘소냐’도 고아가 된 동생들의 뒤처리를 끝낸 뒤 그의 뒤를 따른다. 또한 그의 누이동생 ‘두냐’는 시종 사랑이 변하지 않는 그의 친구 ‘라즈미힌’과 결혼식을 치르게 된다.
‘라스콜라니코프’ 그는 사회의 희생자였다. 부패된 사회에서 빠져나가고 싶어 하는 나약함이였다. 만약 그런 그를 소냐가 깨우치지 않았다면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아마 되돌릴 수 없는 악마의 구렁텅이에 빠져 자신을 사회의 영웅이라 생각하며 영원히 부패된 사회의 희생자로 악만이 존재하는 그런 마음을 갖고 생활하며 결국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부패될 것이다. ‘라스콜리니코프’ 그는 그런 부패된 사람들을 곁에 두고 있었으면서도 그들이 소리치는 말이 사회의 영웅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구원받기를, 다시는 자신 같은 사람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것을 그는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라스콜리니코도 모른프’는 우리와 같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하고 깨달아야만 한다는 것을 깨우치게 하고 우리가 지금 그가 걷고 있는 길을 오늘의 우리가 똑같이 걷고 있음을 본다는 것에 주목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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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사랑의 자리를 보게 한다 - 배성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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