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데스크칼럼

용어


일전에 한 일반언론사 종교전문기자가 각 종교에서 ‘죽음’을 가리키는 용어에 대한 짧은 글을 쓰면서, 불교는 고통과 번뇌의 세계를 떠나 고요한 적정(寂靜)의 세계에 들어섰다는 뜻의 “입적”(入寂)이라 하고, 천주교는 선생복종(善生福終), 즉 생을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끝마쳤다는 뜻의 “선종”(善終)을 사용하지만, 개신교는 “소천”(召天)이라고 쓰는데, 이게 영 말이 안되는 용어여서 기자가 사용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유는 소천이란 말의 뜻은 글자 그대로 하면, 부를 소(召) 하늘 천(天), 즉 ‘하늘의 부르심’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하다’를 붙여 동사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기독교의 목사가 죽으면 “별세”(別世) 혹은 “영면”(永眠)이라는 일반용어를 쓰고 있다고 했다. 기독교에는 죽음을 가리키는 별도의 용어가 없는 셈이다.
종교에서의 언어는 그 용어가 담고 있는 종교적 사상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 개신교는 신도들의 정신에 담을 수 있는 용어를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 하나의 예로 교회에서 복을 받았다는 의미로 쓰이는 “축복”(祝福)이 있다. 축복은 글자대로 하면 빌 축(祝), 복 복(福)이다. 이는 복을 받았다는 뜻이 아니고, 복을 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하셨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그래서 개역성경은 명확하게 하나님의 행위에는 “복을 주셨다”고 했고,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복을 빌 때는 “축복했다”고 쓰고 있다. 그런데 현재 한국 기독교는 ‘복’과 ‘축복’을 구분하지 않은 채, 하나님께나 사람에게 모두 “축복”을 사용하고 있다. 마땅한 용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주교는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뜻의 “강복”(降福)과 사람이 복을 빈다는 뜻의 “축복”(祝福)을 구분해 쓴다. 우리가 보기에는 천주교가 대단히 기복적인 사상을 가진 것 같지만 이런 용어 사용의 구분에서 볼 때, 신학적 정확성을 표현하려는 노력이 앞서 있다. 한국교회에는 똑똑하고 잘난 신학자도 많고, 훌륭한 목회자들도 많은데 왜 이처럼 중요한 용어 하나도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하는지 답답하다. 용어가 정확하지 못하면 그 의미가 변질된다. 한국교회에 기복신앙이 난무하는 이유도 이런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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