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요즈음 극장가로 사람이 몰리는 이유 중에는 우리가 그동안 바삐 사느라고 잊어버리고 있었던 인간됨의 중요한 요소들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국제시장’은 우리 어른들의 지난 세월동안에 겪어야 했던 역경의 세월 속에서, 한 가장으로서 얼마나 무겁게 책임감을 지니고 살아야 했던가를 모든 시민들이 공감하도록 보여주었다. 어린 학생들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보는 그 모습이야말로, 오래간만에 사람과 사람이 세데 간의 격차를 뛰어넘어서 서로가 마음으로 통할 수 있었던 순간이 아니었던가?
‘언브로큰’의 영화에서도 한 인간이 격동의 세월을 보내면서, 어떻게 그가 당면한 삶과 시간들을 인내하면서 책임 있게 감당할 수 있었던가를 보여주었다. 19세 최연소 나이에 올림픽에 출전하게 되면서 보여주는 인간의 투지와 인내심, 그리고 47일간의 태평양 표류와 850일간의 전쟁 포로로서 겪게 되는 수용소에서의 삶은, 차마 인간이 저렇게 잔인할 수 있는가를 밑바닥 까지 노출시키게 되고, 그토록 악하고 지능적이고 잔인한 환경을 받아들이는 한 인간의 용기와 박애정신은 함께하는 동료들에게 얼마나 힘을 주었던지,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감독 안젤리나 졸리는 마치 ‘마가복음’을 기록한 서기관처럼 섬세하고 인간미가 넘쳐흐르게 장면 장면들을 이어간다.
마가가 우리 인류 모두에게 필요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 그리고 용서와 치유와 구원을 예수로 마무리 할 수 있었듯이, 안젤리나 졸리도 역시 우리에게 인내와 진정한 용기, 용서로서 비로소 치료되는 인간의 구원을 보여주려고 수많은 캐릭터들과 전문 종사자들을 등장시켜서, 루이 잠페리니를 통한 참된 인간구원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Louie Zamperini(1917~2014)는 마치 자신의 경주를 끝까지 경주할 수 있었던 바울사도처럼, 선한 사움을 마치고 달겨 갈 길을 다 달리고, 그의 경주를 진정한 용서로서 완벽하게 끝을 맺었다. 모세 역할을 맡아서 촬영에 임했던 찰톤헤스톤은 ‘모세’ 그를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를 고민하여 태양이 작열하는 시내산을 세 번이나 오르내리면서, 모세의 환영을 세 번이나 보았다. 안젤리나 졸리는 다행스럽게도 루이가 살아있는 동안에 그와 사귐을 가지면서 그와의 만남을 깊게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연출은 더욱 진정성이 스며져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영화장면을 찍는 동안에 기도를 할 수 밖에 다른 아무 도리가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자 그녀도 루이처럼 기도를 하였고, 기도의 기적을 경험하였다.
우리는 이처럼, 영화뿐만 아니라 오페라나 오케스트라연주회나 발레 등에서 연출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 역시 얼마나 자신의 삶을 끝까지 인내하며 성실하게 달려가려고 힘쓰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저들이 저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 역시 우리 사역자들과 다르지 않다. 희망과 믿음, 사랑과 용서와 치유......, 진정한 한 인간으로서의 참된 모습을 만나려하고, 그들을 그리면서 동시에 자신의 구원과, 자신의 진정한 이야기를 써내려 가느라 얼마나 인내하며 힘쓰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우리가 성경에서, 고기 잡다가 예수를 만나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 베드로, 오수를 즐기는 대 낯에, 내치지 않는 발걸음을 내디디며, 야곱의 우물에 물 길러 나왔다가, 지금까지 함께 살아왔던 그 여섯 남자들과의 이야기를 뒤로하고, 이제는 일곱 번째의 럭키 한 남자 예수를 만나서, 자신의 가슴에서부터 샘물이 솟아나는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가게 된 사마리아 여인 등, 이들 모두가 한결같이 자신의 삶의 출발이야 어찌하였던지, 자신의 마지막 경주를 아름답게 끝내려하는 열정은 영화 속의 인물들과 다르지 않다.
모세도 역경의 세월을 경험하고 있었지만, 거짓말처럼 나이 80이 되어서 다시금 권력을 손에 쥐게 되었는데, 자신의 위치가 그 어떠한 자리보다 위험한 자리에 처해있음을 알게 되었다. 모세 자신은 하늘이 손에 쥐어준 능력의 지팡이를 지니고 있었고, 하나님과 대면하기 위해 언제든지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자신의 백성들은 광야를 통과하면서 원망으로 38년의 세월을 보냈는데, 어느 날 부터인가 백성들의 생각과 태도들이 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물이 마른 한 장소에 다다랐을 때에 확연하게, 그 맞닥뜨린 상황을 다르게 연출하였던 것이다. 모두가 ‘우물물아 솟아나라’ 하며 합창을 하였다. 이제야 가나안에 들어 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자 그는 만감이 교차되면서 느보산으로 올라갔고, 거기서 자신의 경주를 마치었다. 사역자가 이렇게 멋있고 말끔하게 자신의 경주를 마치려함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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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교회, 행복한 세상-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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