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3(화)
 

마음의 문단속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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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대부분의 아파트에는 경비원이 배치되어 있어서 외부 판매원들이 출입하기가 쉽지 않지만 한때는 이런 제재가 없어 외출 할 때는 항상 남아 있는 가족에게 “문단속을 잘 하라”고 타이르기 일쑤였다.
그런데 문단속은 현관이나 대문만 단속 할것이 아니라 마음의 문단속도 잘 해야 한다. 자산과 생명을 노리는 흉한 사람처럼 영혼을 멸망시키기 위해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교회를 잘 나오시는 성도 한분이 갑자기 교회를 안 나오신단다. 간곡하게 권면해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후에 들리는 말에 의하면 강에 대해서 상담을 드린다고 찾아온 불청객을 맞이한 것이 결국 이단자에게 넘어간 단초 가 된 것이었다. 마음의 문단속을 잘못한 것이다.
이들은 대개 이런 말로 초신자들에게 도전해 온다고 한다.
“교회 주보를 보시오 교회의 목사의 관심사를 읽을 수 있지 않은가요? 교회 확장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그러나 그 말부터가 비기독교적 입니다. 교세란 무얼 말하는 것입니까?”
“교인 수인 통계 헌금 통계 헌금액 표기(경쟁심 유도) 그런 거 아닙니까?”
“그 대신 구원 문제 같은 것이 개인적으로 해결 된 일이 얼마나 됩니까?”“당신은 지금까지 목사를 몇 번이나 만났으며 영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 상담을 받아 보았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진정 바라고 계시는 참된 교회를 이룩하고 있습니다”
“교회당 건물도 지을 필요도 없고 숫자를 헤아리는 것도 없고 기성 교회와는 다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것을 어디에다 공시하거나 자랑감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배와 말씀과 기도와 세례가 중요시 되며 일대 일의 상담 요원이 언제든지 신앙 상담을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교회를 나가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조용히 생각해 보시오. 그러면 주님이 판단을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 교인은 이단에게 넘어가게 되었는데 그런 일이 있은 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일고의 들을 가치도 없는 내용들인가?
그런데 그들 말 속에도 언뜻 귀담아 들을 말은 있었다. 나는 그 후로 주보에 헌금이나 출석 통계를 싣지 않기로 하였고 가급적 교회를 개방하기로 다짐도 하였다.
그리고 교인을 대중으로 보다 일대 일의 만남을 강화해야 되겠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쉬운 일이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지난주에는 낯선 편지 한통을 받았다. 곧 바로 개봉해 보니 내용이 수상하다.
“목사님 저를 대적 하지 마시고 성경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저는 스스로 온 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대언의 사자로 교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생략)
이것들을(계1:1-계22;21)보고 들은 자는 저 뿐이며 저 외 어느 누구도 아는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생략)
초림 때 약속의 목자는 예수님 이셨고(요한 5:37--40)재림의 계시록 성취 때 약속한 목자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약속의 메시야를 무시하면 구원 받지 못합니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읽어볼 가치도 없는 내용들이지만 이러한 내용도 성경의 깊은 인식이 없는 평신도들에게는 미혹 받기 쉽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마치 요한이 보고 들은 내용을 자신이 보고 들은 것처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을 하고 기 성 교회들에게 자신이 메시야 인 것처럼 무작위로 편지를 보낸 것 같다
그러면서 생각해 본다. 사람들은 곧잘 멸망과 불행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마음 문을 활 짝 여는데 구원과 평화, 사랑과 기쁨을 가지고 오시는 주님을 향하여는 굳게 닫아 버 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문단속을 잘하는 것은 무조건 굳게 닫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떤 말을 하건 진리가 아닌 것은 듣지도 말고 아예 문을 잠가 버리고 못 들어오게 막아야 하고 복된 것은 활짝 열어 드려야 한다. 만물 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페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 하시느니라. ...(렘17:9-10)복음을 받아들이는 복된 문단속은 행복의 조건이 아니겠는가?
이제 어느 때 보다 문단속을 잘 해야 할 때임을 절감하고 마음의 문고리를 점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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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 규 목사(금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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