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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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그 조상들이 섬기던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것은 광야에서 불붙은 가시 떨기나무에서이다. 그의 나이 80이 다된 때였다. 모세가 40세 되는 해에 동족을 핍박하는 가해자를 죽이고 해외로 도망쳐 가정을 이루고 산지 오랜 후의 일이다.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가로되 내가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출 3:1-4). 이 때 모세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일상에서 아무도 없는 혼자일 때 때때로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다.
◇모세가 그 부르심에 즉시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하자, 하나님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명령한다. 이는 모세가 이집트에서 압제받는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 지도자로 부름받는 순간이다. 그 곳은 모세가 평소에 양무리를 이끌고 수없이 다니던 곳으로 모세의 일상이 있는 곳일 뿐, 전혀 새로운 땅이나 거룩한 곳이 아니다. 그러나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자 거룩한 땅이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이루어지고, 또 하나님이 임재하면 그것이 어디든 거룩한 곳이 된다. 이후 모세는 온갓 시련과 풍상을 겪으며, 이슬라엘 민족을 이끌고 40여년의 긴 광야생활 끝에 여리고 맞은 편 모압 평야에 이른다. 그러나 그는 그곳 느보산에 올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생을 다한다.
◇“모세가 죽을 때 나이 일백이십 세이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신 34:7). 그의 소명도, 그의 죽음도 모두가 하나님의 부르심의 은혜일 뿐이다. 하나님이 부르시는데 ‘나는 아직 어리니 안된다’고 누가 거부할 수 있는가? 또 ‘나는 아직 힘이 있으니 아직 남아 일을 더해야 한다’고 누가 그것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모세는 눈도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도 쇠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 사명이 다하매 그도 죽었다. 이것이 부르심을 받은 사명자의 정계성이다.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출 19:18). 시내 산과 광야 떨기나무 가운데 불꽃과 같이 임하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 일상에서도 ‘불’같이 임하신다. 그 강력함에 아무도 그의 부르심을 저항할 수 없다. 그것이 불가항력적 은혜이다.
◇광야의 가시덤불은 보잘것 없는 존재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하필 보잘것 없는 가시덤불에 임하셨을까? 모세는 바로의 왕궁에서 이집트의 온갖 학문을 배웠다. 그러나 그 학문은 광야에서 모세가 살아가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모세는 자신이 보잘것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 그때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다. 내가 광야의 가시덤불 같이 보잘 것 없는 존재임을 깨달을 때, 하나님은 나를 찾아아 부르신다. 네가 선 땅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서 일상의 신발을 벗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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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가시덤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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