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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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장로교는 1885년 미국 북장로교의 선교사 언더우드의 도착으로 시작되었는데 그 직후에 호주 장로교, 남장로교, 캐나다 장로교에서도 각각 선교사들을 파송함에 따라 서로간의 선교적 마찰이 생기게 되었다. 이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선교사공의회’를 조직(1893)하고 선교구역을 분할하였다.
이 네 선교부는 결국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 함께 모여서 ‘독노회’를 설립하면서 단일교단을 형성하였고 오늘날 한국 장로교회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장로교회의 신학적·제도적 특징은 칼빈의 종교개혁에서 시작된 개혁교의 일반적 전통에서 서로 다르지 않는다. 신정통주의 신학자 장공 김재준 목사와 그가 세운 조선신학교(현재 한신대학교)가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사건이 분열의 원인이다.
1953년 당시 김재준 목사는 성서비평학을 받아들였는데, 이로 인해 축자영감설을 주장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와 갈등을 빚었다. 결국 한국 장로교는 ‘기독교장로회’와 ‘예수교 장로회’로 분열했다. 기독교가 한국에서 성장하던 시기는 19세기 구한말부터 일제의 식민시대를 거쳐 해방과 독립,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던 요동기였다.
한국신학의 발달은 바로 이러한 현실에서 교회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전개되어 왔으며 국가 민족 문화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민족적 위기를 겪으면서 신앙과 교회 사상의 형태가 결정되었다. 그 나타남은 '첫째는 개인의 영적구원과 소망에 중점을 둔 교회의 내적 운동이고 둘째는 현실의 고난과 부조리를 극복해 나가려는 외향적 신앙운동이며 셋째는 한국의 전통문화 및 종교와 기독교 복음과의 만남을 통해 한국문화전체의 의미와 구원을 모색하는 신앙운동이었다'고 유동식 신학자는 말한다.
이 세 가지 신앙운동은 다시 세 가지 신학의 흐름으로 전개되어 보수적 근본주의신학, 진보적 사회참여의 신학, 문화적 자유주의의 신학으로 나타났는가 하면 여기에 박형룡은 신학에 대한 열정이 대단해 장로교 계통의 신성중학교 평양숭실전문을 졸업했고 중국 남경의 금릉대학을 거쳐 미국 프린스턴에서 신학석사, 루이빌의 남침례신학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장로교총회로부터 표준성서주석위원장을 맡아 9권의 표준성경주석을 펴내고 역저 ‘교의신학’을 집필했다. 박형룡은 1953년 평양신학교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입장에서 장로회신학교 교장으로 취임했는데 이때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선교사에게서 받은 신학을 지키며 ‘청교도적 개혁주의 정통신학’을 낳았다. 이때문에 그를 가리켜 한국 칼뱅주의 신학의 기수요 보루라고 한다. 박형룡의 신학을 이어 받은 대표적인 교단이 예장합동, 고신개혁 등 보수 교단들이다.
여기에 진보적 사회참여신학은 ‘삶’이 사회적 살림살이를 통해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실현하려는 신학이 되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이 되신 성육신의 사건(예수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 부할)은 바로 이러한 삶의 역사적 실현이다. 따라서 성육신의 사건을 복음의 핵심으로 받아들이고 사회정의를 위한 예언자적 참여가 뒤따랐다. 이 신학적 전통을 낳은 대표적 인물이 김재준이다.
김재준은 한국 진보주의 신학의 기수로 불린다.1901년 송창근목사의 전도를 받은 김재준은 일본 아오야마학원 신학부에서 공부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숭인상업학교 교사로 재직 중 그는 평양신학교의 기관지 신학지남에 모두 6편의 논문을 발표, 필화사건을 일으켰다. ‘욥기에 나타난 영혼불멸과 이사야의 임마누엘 예언연구’라는 논문인데 동정녀를 방년의 젊은 여인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1945년 조선신학교가 서울 동자동에서 새 출발을 하자 교장에 취임하고 조선신학교의 신학이념을 발표했다. 그것은 첫째 조선 전체 교회가 학문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세계수준에 도달할 것, 둘째 신학교는 경건하면서도 자유로운 연구가 보장되어 가장 복음적인 신앙에 도달할 것, 셋째 교수는 학생들의 사상을 억압하지 말 것, 넷째 칼뱅주의 신학의 정당성을 재확인 할 것 등 이다.
이 이념은 조선신학교의 모든 교수들의 공통된 교육이념으로 오늘까지 한신대학교에 남아있다. 여기서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의 신학은 대부분 진보적이고,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활동한 교회로서 기독교장로회는 대한성공회와 더불어 기독교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교회로 되어 왔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 당시의 사람들, 즉 민중들과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등, 기존 보수적 개신교계가 하지 못하고 있는 진보적 사회참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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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장로회와 성육신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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