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에 이상한 풍조가 일고 있다. 교회가 목회자를 청빙함에 있어서 그 목회자가 부모 모시는 것을 꺼린다는 것이다. 목회자가 성경의 명령에 따라 부모를 공경하고 싶어도 교회가 이를 좋게 보지 않는 이상한 풍조가 한국교회에 널리 퍼져가고 있는 것이다. 목회자가 그 부모와 함께 살면 교회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에서이다. 한국교회에 망조(亡兆)가 들려니 교회 안에 별 희안한 사조가 다 생겨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목회자에게 자녀가 많아도 청빙에 지장이 있다고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떻게 하면 자식을 더 많이 낳을 수 있게 할 것인가 고민하며 장려하고 있고, 교회는 주일학교에 아이들이 없어서 ‘다음세대’를 걱정하고 있는 마당에, 목회자가 자녀가 많다고 하여 청빙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는 교회가 왜 이 땅에 존재하는가 하는 그 존재 이유와 교회의 미래는 생각하지 않은채, 순전히 돈 몇푼 아끼려는 개교회의 세속적 이기주의가 보여주는 사례이다. 목회자가 그 부모를 극진히 모시는 모습을 보인다면, 교인들에게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설교 10번 하는 것보다 더 큰 감동과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이는 사회적으로도 교회의 존재성을 드러내는 매우 큰 교훈이 된다. 그런데도 어리석게 교회가 목회자를 청빙하면서 부모 모시는 것을 꺼리고, 자녀가 많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풍조가 일고 있다니, 이런 교회가 어떻게 우리사회를 인도하고, 교회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리석은 짓이다.
◇교회는 오히려 부모를 모시는 목회자에게 그 형편대로 ‘부모 수당’을 드리고, ‘다자녀’ 목회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니겠는가. 선교학에서는 가장 확실한 최상의 선교방법이 신자들이 자식을 많이 낳는 ‘생물학적 성장’이라고 한다. 한국교회도 이제까지 이 생물학적 성장에 기대온 바가 크다. 또한 이는 지금 전 세계 이슬람이 추구하고 있는 선교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성경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고 있는데, 한국교회는 사회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한국교회는 왜 이 좋은 교회성장 방안을 외면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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