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거울을 사라 - 이미옥
2015/10/10 09:5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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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사세요, 거울 사세요” 한사코 거울을 사라는 여인을 끝내 외면했다. 비록 꿈속에서였지만 왠지 개운치 않았다. 거울은 남보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장자의 정신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나에게 주어진 삶의 어떤 사명과 함께 늦가을에 접어든 자기 자신을 마주 하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만 24년 1개월, 한창 젊은 인생의 봄철을 맞아 쓴 윤동주의 참회록 시구는 내게는 부끄러움을 넘어 차라리 형벌이다.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골이 남어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가……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어 보자……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참회록을 절망적이고 참담한 슬픈 날이 아닌 그 어느 즐거운 날에 쓴다는 그 역설에, 거울을 밤이면 밤마다 손바닥으로 닦는 것이 부족해 발바닥으로까지 닦는다는 그 신산한 치열함에, 마침내는 거울 속에 슬픈 사람의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이 나타난다는 그의 고백이 세례 요한의 광야의 외로운 외치는 소리로 들려 왔다.
   비록 자신의 살았던 시대가, 그 일제 시대의 어둠이 그를 덮었을지라도 그는 끝내 그 어둠을 초월할 수 있는 한 자루의 촛대였다.  여리지만 어둠에서 오히려 밝음을 보여 주는 빛이었다. 비록 초 한 대지만 그 어떤 빛보다 강한 한순간 방심하고 있는 마음을, 나라를 잃어버리다 못해 팔아먹는 양심이 무디어 가는 거의 끝나는 곳으로부터 불타오르기 시작하는 반격이었다. 어둠이 그 젊음의 제물로 인해 마침내 암흑이 창구멍 통해 도망간 <초 한 대>의 빛이었다.
  내 방에 품긴 향내를 맡는다.// 광명의 제단이 무너지기 전/ 나는 깨끗한 제물을 보았다.//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 그의 생명인 심지까지/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불살라 버린다.// 그리고도 책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 매를 본 꿩이 도망가듯이/ 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나의 방에 풍긴/ 제물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
  이 가을날, 늦가을 맞은 내가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다며 어둔 밤에 별을 헤는, 윤동주라는 맑은 빛을 그리워함은 당연하다 하겠다.  한 시대의 제물의 위대한 향내를 풍기는 그가, 이렇게 부활의 생명으로 곁에 나타나 함께 호흡한다는 것은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는 늘 깨어 있어 자신을 성찰했다. 그의 또 하나의 거울, 바로 우물을 통해 말한다.
  높디높은 하늘이 살포시 깊고 깊은 우물물 바닥에 침잠해 있다. 하늘의 밝음이 우물의 어둠에 의해 다시 되비치는 이 신비로운 현상 역시 계절은 봄날이 아닌 가을이며 때는 낮이 아닌 어둔 밤이다.
  그의 우물 속에 비치는 달, 구름, 바람, 그리고 자신, 모두가 우물이란 공간에 유폐되어 있다. 그게 싫어 그는 떠난다. 그러나 연민으로 곧 다시 와 우물을 들여다본다. 늘 그의 시에는 달, 구름, 별처럼 하늘이 있고, 그리고 우물, 어머니, 어릴 적 친구들 같은 땅이 있다. 하늘과 땅. 은총과 중력이다.
  가을이 오면 자신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다던, 가을이 오면 후회 없는 삶을 위하여 살아가겠다던 윤동주, 그는 그가 바라던 가을을 만나보지도 못하고 봄날에 홀연히 쓸쓸히 감옥에서 떠났지만 그가 남긴 열매는 그 어떤 가을날의 추수보다 많다.
  반면, 지금까지 이 땅에 남아 하얗게 서리 내리는 늦가을을 맞고 있는 나 자신은 텅 빈 손이다. 그래서 꿈에서조차 살아 있음이 부끄러워, 한사코 거울 사는 것을 거부했던 것이다.
  또 한 번 그의 시구를 빌린다. 그게 윤동주 거울을 통해 바라본 나의 고백이라면 조금은 가벼워질까? “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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