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의 삶
2015/10/16 14:0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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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산상에서 설교하신 시대적인 삶은 유대인들이 처하고 있던 때와 로마에 의한 압제상황에 따른 시대적인 삶에 대한 가치관을 일깨운 설교이다.
참된 삶의 행복은 그 시대가 일군 가치관 형성에 삶의 인식이 다름을 알게 한다. 가난한 자, 의로움에 굶주린 자, (그러므로) 슬퍼하는 자, 핍박받는 자들에게 내려지며 바로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 건설이 주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또 다가오는 삶의 위기에 대한 예언자적 선언이다. 종말론적인 개념으로서의 하나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고 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임을 선언하고 이를 위해 인간의 결단과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행복에 이어 율법에 대한 그리스도적 삶이 피력되고 있다.
그리스도는 신약의 삶이 구약의 삶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윤리적 기준인 사랑으로 완성하려는 것임을 밝히면서 삶의 질 향상은 물질적 풍요나 인간다운 삶의 필요 요건이 될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의 충분한 조건이 될 수는 없다.
오늘에 처한 세상에서의 삶을 보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삶의 질’ 지표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어, 최근에는 ‘삶의 질’ 지표로서 풍요성·안정성·보건성·능률성·쾌적성·도덕성 등을 지적하는 것이 일반화 되었다.
여기서 풍요성(abundance)이란 사람이 살아가는데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고, 안정성(safety)이란 주민들이 신체나 생명에 위협을 받지 않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적·환경적 조건을 말하며, 보건성(health)이란 주민들이 위생적인 환경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여러 가지 조건을 말한다.
또 능률성(efficiency)이란 통근·통학 등 일상 생활상의 편리 뿐만 아니라 생산·유통 등 경제적·사회적 활동상에 능률이 보장되게 교통·통신 수단의 확충, 각종 시설의 설치 등을 의미하고, 쾌적성(comfort)이란 사(私)생활의 비밀보장과 공(公)생활에서의 도서관·공원·극장 등 문화시설의 설치를 통해 주민들에게 편익을 제공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도덕성(morality)에서 오늘날 생활인으로서 자칫 소홀하기 쉬운 인간성의 회복과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 그리고 직업윤리·생활윤리 등의 준수를 의미한다. 그러나 성서에서는 피조물로서의 인간관을 살피면 죄인으로서의 인간이 자리를 옮길 전이(轉移)상태로 변화하는 일을 가능케 하는 면모를 알게 한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고 자기의식이나 자기초월, 그리고 자유에 있어서 다른 동물들과도 다르며 역사를 가지고 있고 도덕적 결단을 하며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관계에서 살아가고 있고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한계에 이를 때 그리스도교의 신앙이란 복음의 선포와 들음을 통한 인간의 믿음을 여기에 드러낸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은 인간은 그 성취가 하나님에게 부합되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삶과 죽음의 관계에서 그 삶이 이루게 됨을 깨닫게 한다.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는 삶의 질(質)을 중요시하는 이른 바 ‘조용한 혁명’(Silent Revolution)이 전개되고 있다. 즉 물질적 풍요와 생활의 안정을 제일의 관심사로 여기던 과거의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삶의 질’(quality of life)의 문제로 관심이 서서히 옮겨진 것이다.
미국의 한 사회조사에 의하면 1945년부터 1979년까지 미국 국민의 실질소득은 70% 증가하였는데도 이 기간 중에 ‘아주 행복하다’고 대답한 사람은 그 인구 비율이 40%에서 30%로 감소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보더라도 인간은 물질적 풍요만으로는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없음이 입증된다.
근대 기술이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의 머리와 손을 이용하여 창조적이고도 유용한 일을 하는 즐거움을 앗아간 대신 전혀 즐겁지도 않는 종류의 일을 하도록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전혀 생산 활동과는 관계없는 일로 무척 바쁘고 있다.
일찍이 인도의 간디는 세계의 빈곤은 대량생산에 의해 의결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에 의해 생산으로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했다. 대중에 의한 생산체계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자원, 즉 모든 사람들이 보유할 수 있는 그들의 현명한 머리와 정교한 손과 좋은 도구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을 알게 한다.
대량 생산 체계 하에서는 기술이 본래부터 폭력적이고 생태계의 타격을 주며 재생 불가능한 자원에 대해서는 자기 패배적이 되어 인간을 무능하게 만든다. 훌륭한 현대 지식과 경험을 잘 이용한 대중에 의한 생산 기술은 분권화를 촉진하고 생태계의 질서에 적합하며 자원의 사용에 신중을 기하여 인간을 기계의 노예가 되게 하는 대신 그것들이 인간에게 봉사하도록 창조되어 있다는 이치를 알게 한다. 이제는 19세기의 거대주의와 물질주의를 거쳐 오는 동안 이 거대주의의 폭력으로 부터의 탈피하여 오늘의 우리의 삶은 축소 지향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해 가지 않으면 살아 남기가 어렵다. 구약성서에서의 전도서는 ‘만물에는 계절이 있고 하늘 아래서는 모든 목적에 때가 있다. 파괴 할 때와 건설할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서 한 곳에 모을 때가 있다’고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우주의 거대한 리듬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지침을 일러 준다. 우리 삶의 생존 경제를 가르치는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에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옳은 일에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을 얻을 것이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나님을 뵙게 될 것이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이 시대가 삶의 지침을 여기서 깨달아야 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눈을 뜰 때 우리 주위에 펼쳐있는 세계를 본다. 우리는 그 세계의 중심에 있다. 우리가 보는 수와 양의 비율이 다른 비례(比例)와 시야는 여러 물체와 나 자신과의 관계, 거리, 높이 등에 의해서 결정된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육체적 시각은 어렸을 때 그대로이며 변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보는 세계의 중심이다. 지평선은 내가 서있는 곳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의 가치관은 사물이 우리 자신에게 끼치는 영향에 따라 정해진다. 우리는 각기 자신의 세계의 중심에 자리 잡는다. 그러나 나는 세계의 중심이 아니고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리는 기준도 아니다. 그것은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시다. 다시 말하면 나는 처음부터 나는 내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은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원죄인 것이다. 성서에서 죄과의 문제는 죄의 결과이고 죄의 행위에 대한 죄인들의 책임을 알게 한다. 예언자들과 예수님은 부자와 강자와 현자와 의롭다고 하는 자들을 골라서 특별히 단죄했다. 이는 죄의 더 큰 결과에 대한 그들의 책임 때문에 그러했다. 삶은 익을수록 단순해지고 진리는 높을수록 순수해진다. 그래서 값진 것일수록 양이 적고 금언일수록 문장이 짧다. 시대의 삶은 이러한 삶으로 살아야 하며 겸손의 태도로 자기를 낮추고 자기 부족을 부족으로 알기에 사실을 사실로 시인하고 작은 것에도 최선을 다하여 사는 삶을 산상수훈은 우리에게 넌지시 일러준다. 작은 것 살피는 삶의 양(量)을 알게 한다. 산상수훈은 삶을 구속하는 율법이 아니라 삶을 온갖 억압에서 해방되기 위한 생동하는 삶의 지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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