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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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기독교에는 집사, 장로, 감독이라는 세 가지 직책이 있었다. 이것이 가톨릭교회로 넘어오면서 부제(집사), 사제(장로), 주교(감독)로 바뀌었다. 그런데 중세교회는 미사를 집전할 때 사제를 도울 보조자로서 시종(侍從)이 필요했다. 이를 차부제(次副祭)라고 불렀다. 차부제라는 말은 부제 아래 있는 직제라는 뜻이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1972년에 폐지된 제도이지만, 동방정교회에는 아직도 있는 제도이다. 그런데 ‘추기경’은 이 세 가지 직제에 해당되지 않는 가톨릭교회의 교황제를 위해 존재하는 귀족계급으로서 부제나 사제 또는 주교가 아니라도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차부제 가운데서도 추기경이 탄생했다.
◇중세교회에는 차부제에서 교황이 된 사람도 있었다. 중세 교회대분열을 종식시킨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선출된 오도 콜로나 추기경이 바로 그 사람이다. 오도 콜로나는 당시 로마 교황(그레고리우스 12세), 아비뇽 교황(베네딕투스 13세), 피사 교황(요한 23세)으로 갈라져 있던 세 교황을 모두 폐위시키고, 1417년 11월 11일 새교황에 뽑힌 마르티누스 5세이다. 그는 이탈리아 명문 가문의 귀족으로써 추기경의 지위를 가졌지만 교회에서는 차부제에 지나지 않았다. 교황에 선출된 그는 11월 12일에 부제로 임명되고, 11월 13일에 사제로 임명되고, 11월 14일에는 주교로 임명된 뒤, 한 주 뒤인 11월 21일에 교황으로서 축성했다.
◇신성로마 황제 지기스문트와 피사계 교황 요한 23세가 합의해 소집한 콘스탄츠 공의회는 1414년 11월 1일 부터 1418년 4월 22일까지 45차례 열렸됐다. 당시 불과 5,500명의 인구가 살고 있던 이 도시에 8만에서 10만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공의회에는 추기경 33명, 총대주교 5명, 대주교 47명, 주교 145명, 명의주교 93명, 신학교수 217명, 교회법과 세속법 교수 361명, 의학 교수 171명, 그 외에도 37개 대학교에서 파견한 많은 수의 인문학 교수들, 83명의 왕과 제후가 파견한 대표단들, 공작 38명, 백작 173명, 남작 71명, 기사 1500명이 모였고, 이들의 대규모 수행원들과 교구 직원들, 마부들, 필경사들, 빵굽는 자들, 금세공가들, 온갖 부류의 상인들까지 모여들었다.
◇콘스탄츠는 독일 남부 보덴 호수가에 있는 도시로, 호수 건너 멀리 남쪽으로는 알프스가 둘러쳐 있고, 밭과 초지와 포도원 등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져 있는 휴양지이다. 콘스탄츠 공의회가 중요한 이유는 갈라져 있던 교회를 통합시켰다는 것과 함께 교회의 최고 권위가 교황이 아니라 공의회에 있음을 확인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는 점이다. 이 성명서는 “공의회는 성령 안에서 합법적으로 모였기 때문에 자체가 에큐메니칼 공의회로서 온 교회를 대신하며, 그리스도에게서 직접 권위를 부여받으며, 교황을 비롯한 모든 직위의 사람들이 교회의 신앙과 개혁에 관해 공의회가 내리는 결정에 복종해야 한다”고 공포한 것이다.
◇그런데 콘스탄츠 공의회가 교회사에 남긴 오점도 있었다. 보헤미아의 개혁자 얀 후스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화형시킨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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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츠 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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