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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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시간에서 산다는 것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삶을 행복하게 살 권리는 자기정체성의 문제를 알게 한다. 삶은 누가 내 대신 살아준 것이 아니고 내가 사는 것이다. 이 삶은 ‘이 세상’에 와서 살다가 ‘저 세상’으로 가는 삶을 사는 것이라면 여기에는 그 삶을 놓으신 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여기에 놓으신 분의 뜻을 찾는 것은 그 분의 의도에 따라 살아가는 이유를 알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삶”이라는 점을 밝히는 것이다.
여기에 구원 얻은 믿음은 창조주 하나님의 삶은 곧 그 길을 찾는 것이다. 피조물은 모두가 자기 스스로는 삶을 구원할 수 없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산다. 길은 어디에나 가는 길이 아니다. 가는 목적을 따라 가야 한다.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진리를 터득해야 하고 그 진리는 생명으로 가는 삶의 자리를 알아야 한다.
이 세상의 나그네 같은 삶의 길에서 방황하지 않고 지름길로 들어서는 진리의 터득이 한 생명으로 참되게 사는 삶의 여정이 되는 것을 알게 한다. 그 앎은 무엇이 옳은지 알아야 하며 여기에 따르는 행동을 제시하는 안내 표시판을 보고 따라가야 한다. 죽음을 이겨 삶의 길을 제시하신 이의 뒤를 따라 가야 한다.
여기에는 안내자도 필요하지만 동행자도 같이 가면 삶이 넘친다. 이는 우리의 내 이웃이 누구인지를 알게 한다. 그런데 우리는 내 이웃이 누구인줄을 모르고 사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지? 생각된다. 세상이 있는 내 이웃이 누구인지를 알게하는 것이다. 세상은 홀로 살 수 없음이 세상살이다. 한 공간을 만들고 시간을 지어서 삶의 목표를 달성하게 하는 것은 삶의 목표를 찾아 길을 가게 하는 지으신 분의 뜻을 이렇게 헤아리게 한다.
삶의 길에는 방향이 있다. 그 방향은 생명의 방향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의 삶의 자리는 살아있어야 한다. 세상에 태어나 던져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삶으로 생명의 삶을 살아야 한다. 산다는 것은 살아있어 생동감이 넘치어야 한다. 그냥 주어진 한 생명을 부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나의 삶 자체가 살아 움직이는 삶의 자세로 되어야 한다.
예수가 생명을 얻는 방법이 어떠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친히 보여주는 점이다. 예수는 자신을 내어줌으로서 나눔을 통한 새로운 질서의 본보기가 되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는 질문의 답을 죽음과 연결하는 죽음은 나눔의 정점을 보여준다. 나눔을 지향하는 그의 삶은 곧 죽음을 향하는 길에 구원의 사실을 일깨운다. 이는 생명의 삶을 내어주며 스스로 보여주는 삶이 “삶은 시간에서 산다”라는 것이다.
흘러가는 시간으로 세월(歲月)을 경험하게 하고 삶을 사는 까닭을 알게 한다. 이것은 '지금'이라는 눈 깜짝할 삽시간의 순간(瞬間)으로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다시 삶을 세우는 일로 어떤 사물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를 순간으로 찰라를 스치게 한다. 여기에서 이것이 “바로 지금” 내가 챙겨야 할 시간이다. 예수의 죽음은 의미를 깨우친다. 생명을 위해서 썩는 것이 무엇인지, 죽음이 어떻게 사는 법인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는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예수의 삶은 이러한 포기를 드러냈으며 이 포기는 죽음으로 완성된다. 이 포기의 순간에서 예수와 그리스도가 이어진다. 예수가 생명을 얻는 방법이 어떠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점이다. 예수는 자신을 내어줌으로서 나눔을 통한 새로운 질서의 본보기가 되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는 질문의 답을 죽음과 연결하는 죽음은 나눔의 정점을 보여준다. 나눔을 지향하는 그의 삶은 곧 죽음을 향하는 길에 구원의 사실을 일깨운다. 하나님은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무한한 하나님의 가능성을 부어 주셨다. 그 가능성을 실행하면 그 가능성은 기적처럼 성령으로 역사하여 모든 능력을 이루신다. 삶의 문제를 해결 하려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지혜의 시스템이 작동하게 하여야 한다. 그럼으로 그 카이로스의 시간의 삶은 삶의 길, 삶의 진리, 생명의 삶을 알게 한다. 하나님은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시다. 성서는 이를 인간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인간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으며 오직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을 돌려야 하고, 성서만이 진리의 기준이다. 그럼으로 그 카이로스의 시간의 삶은 삶의 길, 삶의 진리, 생명의 삶을 알게 한다. 하나님은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끝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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