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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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는 깨달음의 방식을 놓고 ‘돈오돈수’(頓悟頓修)냐, ‘돈오점수’(頓悟漸修)냐 논쟁이 있다. 돈오돈수는 특별한 수행 없이 어느날 단박에 불교의 진리를 깨쳐서 더 이상 수행(修行)할 것이 없는 경지를 이르는 말이고, 돈오점수는 불교의 진리를 깨치기 위해서는 시간을 두고 체계적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즉 돈오(頓悟)는 갑자기 돈(頓)자와 깨달음 오(悟)자를 써서 수행의 단계를 거치지 않은 채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이고, 점오(漸悟)는 점점 점(漸)자와 깨달음 오(悟)자를 써서 수행을 통해 점점 깊이 깨닫는 것이라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이 둘이 다 진리를 깨닫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것을 기독교의 진리를 깨우치는 과정에 대비하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처음 사도들은 예수를 3년간 따라다니며 하나님 나라 진리를 배웠다. 그러나 그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부활하기 전까지는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깨달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베드로만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마 16:16)고 고백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마 15:16). 또는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마 16:9)라고 힐란하며,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2-13)고 예고 했다.
◇그리하여 예수의 부활 승천 후에 오순절 성령이 임하자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공동체 전체가 그가 그리스도이심을 진실로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다메섹에서 하늘에서 들려오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행 9:4)는 음성을 듣고 개인적으로 단번에 그가 곧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이심을 깨달았다. 이후 기독교 역사에는 수 많은 교부들이 특별한 수행과정 없이 성경의 십자가의 진리를 깨달아 기독교의 복음을 전파했다. 그것은 곧 ‘돈오돈수’이다. 또 그와 함께 역사적 기독교는 신학훈련과정을 두고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목회자를 양육했다. 그것은 곧 ‘돈오점수’인 셈이다.
◇한국교회에도 흔히 신학훈련과정을 거치지 않고 성경만을 깊이 연구해 기독교 진리를 통달한 목회자들이 있다. 이들은 대체로 성경을 가르치고 열정적 설교도 하지만 비신학적 용어 사용으로 인해 비판을 받는다. 그래서 교회에서 익숙치 않은 그들의 한두 마디 언사로 인해 '이단 시비'를 당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깨달았다면 그는 곧 ‘돈오돈수’로 기독교의 진리를 체득한 것이다. 그런 사람은 체계적 신학훈련을 받지 않았더라도 신학적 용어만 바르게 선택해서 사용할 수만 있다면 훌륭한 설교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진리를 ‘돈오돈수’로 깨달은 사람이라고 하여 우리가 내칠 필요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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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오돈수·돈오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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