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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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줄근한 바바리 옷차림으로 의미 없는 잡담을 늘어 놓다가, 날카로운 질문으로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LA 경찰청의 형사 콜롬보(피터 폴크 分). 드라마 도입부에 살인범이 먼저 밝혀지고, 범인의 완벽한 계획 범죄가 콜롬보에 의해 밝혀지면서 사건이 해결되는 형식의 형사 추리물인 <형사 콜롬보>. 이 드라마는 미국 NBC를 통해 1968년 2월 20일과 1971년 3월 1일에 2개의 TV 파일럿으로 소개된 후, 1971년부터 1978년까지는 NBC에서, 1989년부터 2003년까지는 미국 ABC를 통해 13개 시즌에 걸쳐 방영되었으며, 국내에서는 1980-90년대 KBS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습니다. 리차드 레빈슨 외 4명이 극본을 썼고, 빈센트 맥에비티 외 4명이 연출하였지요.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세상에 이렇게 멋있는 인물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꼭 형사가 아니더라도 극적 반전을 하는 인물은 많이 있지요. 고종의 부친인 흥선 대원군도, 안동 김씨 세력이 300여 년을 왕비를 안동 김씨 집안에서 간택하여 집권하는 동안, 잔치집에서 게걸스럽게 먹으면서 어리숙하게 보였다가 드디어 기회를 잡게 되지요. 안동 김씨 세력 등쌀에 시달리던 조대비가 대왕대비로서 다음 왕을 결정할 때에 대원군의 둘째 아들인 고종을 왕으로 정함으로써, 대원군이 섭정을 하게 되는 반전이 있게 되지요. 그가 어리숙하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다른 이씨 왕족처럼 모반죄라는 누명을 쓰고 죽었겠지요. 이와 같은 인생 역전은 짜릿한 쾌감을 불러일으키면서 인간다운 멋을 보여 줍니다.
이와 같은 반전에 비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멋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그 어떠한 것과도 비견될 수 없을 만큼 멋있는 곳이지요. 그러나 그 나라를 언어로 설명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나 달란트를 맡긴 주인의 비유, 산상수훈과 같은 역설로 그 나라를 가르치지요.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마태복음> 13:34). 산상수훈에 나오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요”(<마태복음> 5:4)도 아주 훌륭한 역설이지요. 애통하는 자가 어떻게 복을 받는가 말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애통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안다면 그 깊은 뜻을 가히 헤아릴 수 있게 되지요.
예수님의 멋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피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였을 때에 바리새파와 부딪치지 않을 길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혼내지 않았다면, 로마 총독과 대제사장 등 정치인들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았다면, 바리새파와 부딪치지 않았겠지요. 그리고 대제사장이나 로마 총독 앞에서도 굶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고 병든 자를 고쳐 준 것이 잘못이냐며 항변할 기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상심한 제자들에게 몸소 찾아가 몸에 난 상처를 보여주며 위로하시고 그들에게 성령이 함께 함을 알게 하였습니다. 이는 십자가 고난을 감당하며 아버지의 뜻을 성취한 아들의 멋이요, 인류를 사랑한 그리스도의 진정한 멋입니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는 이들이 많이 있지요. 1866년 평양 근처 대동강변에서 한 권이라도 더 조선에 성경을 보급하기 위해 조선군에게 잡힐 때까지 사력을 다해 강가로 성경책을 던진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 이 땅에 병원과 학교를 세워 근대의 터를 닦아 놓은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 당신의 두 아들을 죽인 학생을 양자로 삼은 손양원 목사 등은 진정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거룩한 존재이지요. 이들 외에도 세계의 오지에서 열심히 헌신하는 선교사, 기도하고 말씀 보고 찬송하는 신자 들도 다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멋있는 존재들입니다. 이들이 교회에서 성도들과 교제하며 동역자가 되어 복음을 전파하는 것도 하나님 나라에서 상급받을 멋진 일입니다. 이들이야말로 진정 꽃보다 아름다운 존재이지요.
오늘도 나는 그리스도가 걸어간 거룩한 길을 반추해 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며 화해의 길을 열어 놓으신 분, 가난하고 소외받고 애통하는 자에게 다가가 위로해 주신 분, 하나님 나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신 분, 그분이 계시기에 나는 행복하고 낮고 천한 곳에서도 빛을 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골방에서는 기도를 통하여 주님과 만나고 북녘 땅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하며, 주일날 진정한 예배를 통하여 주님과 만나는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삶을 주신 주님께 감사 기도를 올립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추위가 물러가고 봄이 옵니다. 봄은 그동안 잠자고 있던 씨앗들이 단단한 흙을 뚫고 일어서게 합니다. 이들의 생명은 주님이 세워 놓으신 세계의 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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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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