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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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서 우상(idol)이라는 용어는 명석한 사고를 가로 막는 그릇된 정신 경향을 가리킨다. 편견이나 잘못된 관념으로 흐르는 경향을 우상화라 한다.
성령과 삼위일체의 다른 2위격의 관계에 대하여 로마 가톨릭교회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왔다고 표현해 온 반면, 동방정교회는 성자를 통해 성부에게서 나왔다고 표현해 왔다. 여하간에 가톨릭과 동방정교의 교인들은 대부분 이와 같은 사변보다는 교회의 성사생활에서 성령을 더 체험해 왔다. 사도시대 이래로 세례의식문은 삼위일체 신앙에 근거하고 있다. 동방정교회에서는 에피클레시스(epiclesis: 성령강림을 비는 기도)를 드릴 때 성령이 예배를 드리는 교우, 성찬의 빵, 포도주에 강림하는 역할을 강조해 왔음을 알아야 한다.
성서의 말씀은 모든 사람이 바쳐야 하는 확신, 충성, 헌신을 창조주에게만 바쳐야 하나, 이를 피조물에게 바쳤을 때는 교활한 우상숭배가 된다. 성서의 말씀은 거룩한 하나님을 중재하고 행위가 자동적으로 우상숭배가 된다는 것을 거부해 왔음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 날에 인간의 거만이 꺾이고 사람의 거드름은 풀이 죽을 것이다. 오직 주님만 홀로 높임을 받으시고 우상들은 다 사라질 것이다”(사2:17-18). 10계명의 제1계명은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로 우상숭배를 금지한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과 절대라는 것은 없다는 뜻이다. 이는 세상에는 영구불변의 것은 없다. 그러나 인간에게 영원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다만 세상에는 공짜는 없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모든 행위는 심판받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전3:17). 세상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훌륭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세상의 창조주 주님을 찾아 모든 사람은 주님에게 헌신하고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해야 한다.
참된 교리라 할지라도 그 자체를 넘어서서 하나님을 가리키지 못하면 우상숭배가 된다. 그리스도교의 경전이 성서로 불리는 것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제함이 없나니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1:25).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고 한다. 곧 자기의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고 인간이 끌리는 대로 하는 행위가 우상화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일반적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며 자기를 미워하는 자를 미워한다. 우리 인간은 자기의 사랑에 대하여 무언가 갚아 줄 수 있는 자를 사랑한다. 자기에게 되돌려줄 수 있는 자에게는 주고, 되돌려 줄 수 없는 자에게는 주지 않는다. 이에 반하여 하나님은 자기에게 아무 것도 되돌려줄 수 없는 자에게도 그의 사랑을 준다. 그는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자에 자기를 부인하고 미워하는 자를 사랑한다. 그는 곧 자기와 원수된 자를 사랑한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에는 너무도 이기적이요 속되다. 갖가지 소유에 대한 욕망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려고 한다. 물질에 대한 소유욕, 성(性)에 대한 소유욕, 권력과 지위에 대한 소유욕, 명예에 대한 소유욕 등 갖가지 욕심들이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대개의 경우 우리 인간은 이 욕심에 사로잡힌다. 그리하여 더럽고 속된 존재 일상적인 존재가 된다. 희망이 없는 존재가 된다. 그는 스스로 하나님을 버림으로써 자기를 하나님의 버림받은 자로 만들어 버린다. 이렇게 그는 죄인의 자리에 선다.
하나님을 버림으로써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인간,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하나님의 분노의 심판의 자리에 선 인간을 하나님은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그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그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보잘것없이 작은 민족 이스라엘을 선택하고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는다.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며 예언자를 보내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냈었다. 우리 인간은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감정을 가지고 있으므로 밖으로부터 오는 자극에 대하여 반응한다. 그리하여 희로애락의 태도를 나타낸다. 그러나 외부의 자극에 대하여 마음이 움직여지고 반응한다는 것은 이미 하나의 고통이고 또 고통을 유발한다. 그래서 인간은 끝없는 고통 속에서 살게 된다. 이것이 불완전한 인간, 세상살이의 모습이다. 이러한 인간에 비하여 하나님은 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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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화와 성령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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