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33
2016/09/08 15:3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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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나는 오직 너희만 알았다 (아모스서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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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남녀의 성관계를 표현하는 어휘로 “야다”라는 말이 있다. “야다”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알다”(to know)이다. 창세기 4:1에는 “아담이 자기 아내 하와와 동침하니,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았다.”고 했다. 여기서 “동침하다”고 번역하는 히브리어는 “야다”이다. 따라서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아담이 자기 아내 하와를 아니,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았다.”가 된다. 남편이 아내를 알았더니 아내가 임신했다는 말은 분명 남편과 아내가 부부 관계를 가졌다는 말이다. 우리 한국말에도 “그 여자가 그 남자를 보아서 그 아이를 낳았다.”고 하는 표현이 있다. “알다” “보았다”라는 말이 다 남녀 사이의 성관계를  표현하는 말이다. 이를 번역하는 데 있어서 외국의 역본들은 문자적으로  “아담이 이브를 알았다”(Adam knew Eve. ESV, KJV, NKJV, RSV)라고 번역하는가 하면 “그 사람이 그의 아내 하와와 더불어 관계를 가졌다.”(The man had relations with his wife Eve. NAS), 혹은 “그 사람이 그의 아내 하와와 더불어 결혼 관계를 가졌다”(The man had marital relations with his wife Eve. NET) 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우리 한국말도 이 경우 “동침했다”고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야다"라는 말은 히브리어에서는 부부관계를 기술하는 데 쓰는 말이라면, 문자 그대로 우리 한국말로 “동침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샤카브”이다. 이 말은 잠을 자기 위해서 “눕다”라는 말이나 롯과 그의 딸들의 관계 (창 19:32, 33), 엘리의 아들들과 성막의 여자들의 관계(삼상 2:22), 암논과 다말(삼하 13:14)의 관계 등에서 보는 것과 같이 혼외의 정사나 성폭행 등 비합법적이고 비윤리적인 성관계를 기술하는 말로 “함께 눕다”(to lay with), 혹은 “성교하다”(to have sexual intercourse with)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완곡어법으로“동침하다”라고 사용하는 말이 전혀 다른 의미로 이해될 수도 있다.
우리 인간들 사이에 가장 친밀하고 인격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야다”라는 말이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묘사하는 신학적인 선택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나는 오직 너희만 알았다.
그러므로 너희 모든 죄악으로 인하여
내가 너희를 벌할 것이다.” (아모스 3:2)
여호와께서는 이 땅의 모든 족속 중에서 이스라엘만 알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선택적이고 독점적인 관계를 가졌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이 땅위의 모든 민족들 가운데 이스라엘을 자기의 백성으로 선택하시고, 그들만을 사랑하시는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사랑을 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방신을 섬기는 죄를 범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벌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관계란 일방적으로 선택하고 사랑만을 해주었는데 그를 버렸다고 해서 그를 저주하고 벌을 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관계에는 법적인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관계가 법적인 구속력을 가지려면 서로 계약을 맺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고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 시내 산 언약을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결혼 예식으로 이해하고 있다(렘 31:32). 따라서 여호와와 이스라엘은 부부 관계가 형성된 것이며, 따라서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에 부부 간에 사용할 수 있는 “야다”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다.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에 부부 관계를 전제하기 때문에 선지서에는 여호와를 배반하고 이방신을 예배하고 섬긴 이스라엘을 향하여 간음한 백성, 혹은 행음한 백성이라고 부르고, 그에 상응하는 저주와 벌로 이스라엘을 바벨로니아에 끌려가게 한다. 이스라엘의 멸망을 정숙하지 못한 아내에게 이혼장을 써주고 집에서 내쫓는 당대의 이혼 풍습에 비유한 것이다.
호세아는 “여호와를 힘써 알자”(6:3)고 권면한다. 여호와와 부부처럼 인격적이고 깊은 관계를 갖자는 의미이다. 시편 1:6에는 의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지만 악인은 망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여기서 “인정하다”는 말도 “야다”를 사용하고 있다. 의인은 여호와께서 아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의인은 여호와와 부부와 같은 깊은 관계성을 갖는 자라는 것이다.
히브리어 “야다”와 같은 의미를 가진 헬라어는 “기노스코”(γιν、ωσκω)이다. 마태복음 1:25에서 요셉이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때 까지 “동침하지” 않았다는 구절이나 누가복음 1:34에서 마리아가 천사에게 자기는 사내를 “알지” 못한다고 하는 말도 다같이 “기노스코”(γιν、ωσκω)를 사용하고 있다. 구약이나 신약의 세계에서 “안다”는 말은 성관계를 표현하는 말이나 인간 세계의 가장 밀접하고 인격적인 관계를 기술하는 관계어이다.
신약의 산상 수훈에서 예수께서는 주님의 이름으로 악령을 쫓아내고 이적을 행했다고 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향하여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고 외치신다. 이때 “알다”는 말은 히브리어 “야다”와 같은 개념을 가진 헬라어 “기노스코”(γιν、ωσκω)라는 말을 쓴다. 큰 일을 많이 해서 업적을 남기는 것보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예수님과 우리 사이의 가장 긴밀하고 고상하며 신비한 관계성이 바로 예수님을 아는 것이며, 영생이다. “영생은 이것이니,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신 아버지를 아는 것과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요한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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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권희 님ㅣ2018.02.12 13:54:23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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