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형상으로 이웃사랑 2
2016/11/02 15:0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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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적 완성은 사랑이라는 지고의 법을 준수하고 어떤 형태의 폭력도 거부함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이성주의를 극단적으로까지 밀고 나가기는 했으나 오늘날 가장 영향력이 컸던 19세기 도덕사상가 로서의 인정받고 있다는 점은 정한 이치이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이성주의를 극단적으로까지 밀고 나가기는 했으나 오늘날 가장 영향력이 컸던 19세기 도덕사상가로 인정받고 있을 뿐이다. ‘톨스토이즘’의 근간은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 실체의 파악, 형제애, 범노동, 비폭력, 폭력 혁명에 대한 무저항, 범세계주의, 네 복음서에 기초를 둔 원시(原始) 그리스도교의 확립, 평화주의, 사유 재산의 부정, 모든 문화, 문명, 과학과 예술의 폐기, 국가와 그 모든 제도, 특히 교회의 기피이다.
성서에서 사람은 무엇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람의 존재에 대한 물음이요 삶에 대한 답이다. 신학이나 과학, 철학, 문화, 인류학의 기본적인 물음으로 인간의 내적인 구조와 가치에 대한 의문으로 그동안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 온다. 여기에 인간의 삶의 구성 요소는 무엇이고 사람은 어떤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가? 여기에 일반적으로는 ‘영혼(靈魂)’과 ‘육체’의 두 부분으로 나누기도 하고 ‘영’과 ‘혼’, ‘육체’의 세 가지로 구분하기도 한다. 인간은 물질적 요소인 ‘육체’와 비물질적 요소인 ‘영’ 그리고’혼’도 그 구성함을 말한다(창2:7,마6:25,고전5:3,5).
이는 창조시 혹은 잉태시부터 밀접하게 연합되어 있으며 죽음을 통해서만 갈라진다. 이는 인간의 마음과 정신, 혼이라는 것은 영혼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영혼의 한 속성으로 보며 혼을 인간과 동물에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도 적용함으로 ‘혼’과 ‘영’이 동일한 표현으로 보여 준다. (전3:21, 사42:1, 렘9:9) 다만 인간의 영, 혼은 짐승의 ‘혼’과 질의 차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짐승의 혼에는 단순한 의식, 기억, 정신은 있지만 하나님의 속성인 고도의 옳고 그름을 생각하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은 없으며 하나님을 의식하는 이성과 양심과 불멸성은 없다.
여기서 아는 것은 사람에게는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불멸의 영혼이 있고 이 영혼은 육이 죽어 썩어 없어질 때에라도 죽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을 받는다는 믿음을 가진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희망으로 가득하다. 사람에게 양심이 있어 마음에 찔림을 받는 가책(呵責)을 갖는 것은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삶은 죄에 의해 양심의 고통을 당하는 생활을 한다. 양심의 고통과 두려움은 하나님의 은총과 평강에서 용서를 받는다. 마치 빚진 자가 모든 빚을 탕감 받고 그 채무로 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과 같은 진리의 길이 여기에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에게 삶의 영이 살아난다.
우리에 정신인 생각, 지식이 나의 영보다 높아지면, 영으로서 신령한 생명에 말씀을 깨달을 수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혼(魂) 속의 나를 부인(否認)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육체도 구원된 삶을 살게 된다. “육신을 쫓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쫓는 자는 영에 일을 생각(혼)하나니 내 속에서 영을 따르려는 생각을 가질 때 내 안에서 세상의 더러운 것들과 영적 전투를 할 수 있는 것(롬8:5)을 말씀하신다. 그리하여 6절에서는 “육신의 생각(혼)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영생)과 평안이니라” 함을 깨닫게 된다. 우리 육신은 혼에 무조건 따라 간다. 그러므로 혼이 영에 순종치 못하면 자기 생각이 높아 영의 소욕을 따르려 하지 않는다. 이것이 교만이다. 사도 바울도 이 교만 때문에 “세상 것과 율법과 지식을 배설물처럼 버린다”고 함을 알게 한다. “양심과 영혼의 삶”을 살려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요한복음은 말씀하신다. 모든 만물은 심어 거두는 하늘의 이치를 터득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 썩은 열매를 맺는다는 진리를 알아야 한다. 육의 소욕은 옛사람으로서 껍질에 불과 하다. 혼에 의한 몸의 소욕일 뿐이다. 혼 (마음)에 의해서 몸은 움직인다. 그리하여 십자가에서의 죽음이란 주 앞에서의 내가 죽어질 때 성령님이 주시는 영으로 자라서 거듭난 삶을 살아야 한다. “영에 소욕과 육신에 소욕은 절대로 함께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웃 사랑”을 하는 것이지 자기의 힘이나 소유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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