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 -40
2016/11/24 15:1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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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를 드린 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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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자들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 가운데 십일조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기독교인들은 낼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십일조를 드린 사람들의 신앙과 정신은 무엇인가를 안다면 이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에서 제일 먼저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린 사람은 가인과 아벨이다. 이들은 각자 땀 흘려 일하고 얻은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다. 우리는 그것이 첫 열매인지 십일조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올 때 빈손으로 나오지 않고 제물을 가지고 나왔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나와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고 계신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앞에 제물을 가지고 나오는 것은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바친 것도 그 본질적은 의미는 같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자기 고향과 친족들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땅으로 갔다. 세겜 지역 모레의 상수리나무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그곳에 단을 쌓았다. 그리고 그곳을 중심으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얼마 못가 그 땅에 기근이 닥쳤다. 아브라함은 이집트로 내려갔다. 하나님께 이집트로 내려가도 되는지 그의 갈 길을 묻지 않았다. 이집트에서 아브라함은 그가 예상했던 대로 이집트 왕 바로에게 아내를 빼앗겼다. 대신 그는 많은 물질을 얻었다. 흉년에 먹을 것이 없어서 이집트까지 내려와 그가 원하는 물질은 풍부하게 얻었지만 정작 있어야 할 아내를 잃은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일에 개입하셔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내를 구출하여 주셨다. 아브라함은 이집트를 떠나 그가 처음 단을 쌓았던 곳으로 돌아왔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정착하여 살도록 처음 정하여 준 땅이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신 곳이 제일 안전하고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고 고향 땅을 떠난 사람이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곳을 떠났다가 큰 봉변을 당하고 회개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경제적 어려움은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야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철저하게 깨달았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곳에서 많은 신앙적 교훈을 얻은 것 같다.
이집트에서 돌아온 후 그는 그의 조카, 롯과 헤어졌다. 그들이 사는 곳이 너무 좁아 계속 같이 살다가는 형제간에 큰 싸움이 벌어질 것 같아 아브라함은 롯에게 땅을 차지할 수 있는 선택권을 양보하며 그의 곁을 떠나라고 한다. 롯은 소돔 땅을 택하여 나갔다. 그러나 롯은 얼마 못가 그곳의 전쟁에 휘말리어 포로가 되고 만다. 아브라함은 롯이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서 기른 318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가서 롯을 구출하여 돌아온다.
여기서 318명이란 지금의 대대병력과 같은 병력의 단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가 돌아오는 길에 멜기세덱이라는 살렘 왕이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그를 맞았다. 신약성경 히브리서 7:2-3을 보면 멜기세덱은 “그의 이름을 해석하면, 첫째로 의의 왕이고, 다음으로 살렘 왕, 즉 평강의 왕이다.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으며 하나님의 아들을 닮아 항상 제사장으로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말하자면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아들을 닮은 제사장이라는 것이다. 멜기세덱은 분명 신적 존재임에 틀림없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의 전승을 축하해주기 위하여 선물을 가지고 나왔고, 아브라함은 그에게 그의 소득의 십분의 일을 바쳤다. 아브라함이 그의 소득의 십분의 일을 바친 신적 존재로서 하나님의 아들을 닮은 분이라면 그는 분명, 그리스도 예수님을 예표하는 분이라 할 것이다.
아브라함은 여기서 자기의 소득의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바치고 있는 데 아마도 이것이 십일조를 드린 대표적인 성도의 모습이다. 누가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드리라고 말하거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십일조를 드리라고 명한 적도 없지만 아브라함은 자발적으로 바쳤다. 따라서 십일조를 바친 것은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전쟁에서의 승리와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다.  그는 이 가나안 왕들과의 전쟁에서 자기의 힘으로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예물을 드린 것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린 것은 하나님께 대한 일종의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모든 소유와 재산의 주인이시다는 것을 믿는 믿음의 표현이 십일조이다. 아브라함은 흉년이 들어 이집트로 피난갔다 온 후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물질적인 부요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다. 이 전쟁에서 그는 전리품을 많이 얻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다 차지하라는 소돔 왕의 말을 듣고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시며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여호와께 내 손을 들어 맹세합니다. 당신의 말이 ‘내가 아브라함을 부자로 만들었다.’고 할까 하여 당신에게 속한 것은 실오라기나 신발끈이라도 내가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아브라함은 소돔 왕이 자기를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돔 왕의 것이라면 신발끈이라도 갖지 않겠다고 말한다. 오로지 하나님을 통해서만 부자가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다.
여기서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는데 하나님을 가리켜 “하늘과 땅의 주인”이라고 말한다. 비록 자기가 전쟁에서 얻은 물건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그를 이기게 하셨기 때문에 자기 것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의 소득의 십분의 일을 먼저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바친 것이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는 표현이다. 
셋째로 십분의 일을 드렸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십이라는 숫자는 완전함, 모든 것의 합이라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그가 얻은 것의 총 합계 중에서 십분의 일을 드렸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일부 어느 것은 남기고, 어느 것은 바치고 한 것이 아니다. 말라기 3:10에는 “온전한 십일조”를 바치라는 말씀이 있고, 율법서에는 소나 양이나 곡식에 따라 각각의 십일조를 내라는 말씀이 있다. 따라서 십일조는 나의 소득의 모든 것, 나의 소유의 모든 것의 의미를 지닌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낸 사실을 살펴볼 때, 그것은 만유의 주 되신 하나님 앞에서 한 신앙인으로서의 자기의 신앙 고백적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내 모든 소유의 주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바른 신앙 생활을 할 수 없다. 그리고 그가 그러한 신앙을 가졌다면 그것은 구체적인 행위로 표현되어야 한다. 신약 성경에는 십일조를 바치라는 명시적안 규정이 없기 때문에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십일조의 원래적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다.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내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소유의 주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십일조 이상, 십이, 십삼 조라도 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약속하신다.
“너희는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로 가져와서, 내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 문을 열고 쌓을 곳이 없도록 너희에게 쏟 아 붓지 않나 보아라”(말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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