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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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고 이로써 인류를 그 제자가 되도록 부른다. 전인을 향해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서 표적과 기사로 이를 확증해 주는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복음이 증거된다. 이런 전인적 치유사역은 초기기독교에서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났다. 하나는 일찍이 시작되어 체계화된 사랑의 사역이었으며(행 2:44이하, 4장 32-35절, 6장 1-6절 참조), 다른 하나는 기적을 통해 영적 권세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사도들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역시 은사적 재능을 갖춘 교회 성도들을 통해서도 일어났던 것이다.
첫째로 기적의 신유사역은 사도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교회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20세기의 첫 10년 동안 오순절 운동이 발생한 이래로 그리고 뒤따라 발생한 다양한 은사적 “성령의 물결” 이후로 “치유기적”이라는 주제에 복음적 기독교의 일부에서는 점점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런 운동에 반대하여 곧장 개혁주의와 경건주의 쪽에서 진지하게 유보적 입장을 올바르게 천명하였다.
예수와 그 사도들의 모범을 볼 때 그런 유형의 치유는 전혀 신학적 가치를 갖지 못한다. 그런데도 구원론 중심적 신앙이 이런 유형의 치유나 혹은 기적 행함에 의해 변두리로 밀려나가 무시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두 가지 이른바 등한시된 구원론의 붕괴와 기만적인 인위조작 외에도 또 다른 제 삼의 위험성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치료를 중심으로 하는 전도집회이다.  비기독교적인 종교들의 밀교적 능력을 통한 은밀한 혹은 의식적인 이방화(異邦化)이다.
육체 치유는 하나님의 통치 속에서 강요됨이 없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값없이 주는 은혜로운 선물이라는 생각은 언제나 유효한 것이다. 치유가 복음선포와 동반될 가능성은 있으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며 그런 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최우선적으로는-우리들이 아닌!-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그 은혜를 자랑하려는 뜻을 가져야 한다.
둘째로 교회는 은혜수단인 치유 사역을 활용하였다. 근동 문화사의 영향을 받아 의사들의 의료행위가 제사장 단독의 직무를 통해 대체되었을지라도 양자 사이에는 종교적 유대관계가 유지되었다. 의사도 그 치료활동 속에서 기대되는 치유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우리가 본 바로는 예수의 천국복음은 육체적 치유의 표적에 의해서 입증이 되었고 예수는 그 사도들을 처음으로 파송하시면서 그들에게 복음 선포 위임과 함께 치유관세도 부여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학적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신체심리학적 치유는 영적 직무의 과업으로서 교회의 사역에 내포되어있다. 이는 초대 기독교에서 여러모로 인증된 것이다. 교회의 축복 사역 아래 안수가 예수님 자신의 명령에 근거하여 처음부터 한 의미심장한 기능으로 자리 잡았다. 이것은 상이한 목적들을 위해 실행되는데 그중 하나는 병자 치유이다. 마가복음 6장 13절에 따른 사도적 선교에 대한 서술에서와 주님의 형제 야고보의 편지에서 이 관계가 하나의 예수전승으로 간주될 수 있는데 그 밖에도 초대교회의 병자치유 실제가 보충 설명되고 있다. 즉 기름을 부음이 연관되어 있다.
셋째는 치유 공동체로서의 그리스도인 교회사역의 활용을 들 수 있다.  신학적으로 교회의 치유 기능은 세 가지 양상 아래서 고찰될 수 있다. 먼저는 기독교적 사랑(헬:아가페, 라틴어:카리타스)의 관점이다. 다음으로는 신앙인들의 만인사제직의 관점이다. 마지막으로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라는 관점이다. 이 모든 세 가지 양상들은 물론 서로서로 관계를 갖고 있다. 이들은 모두 특수하게 기독교적이며 교회가 그 역사 속에서 보편적-인간적 고통에 대한 실천적 대답을 주었던 그리고 아직도 주어야 하는 그런 특별한 헌신을 잘 설명하고 있다.
기독교교회와 그 지체들은 그 실존을 하나님의 후원에 의존하는데 하나님은 자신을 대적하는 세계를 이처럼 사랑하사 자기 아들을 세상을 위해 죽음에 내어 주사 역사적이며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시려 하시며 영생을 당신으로부터 하사하신 분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들의 파괴된 그분과의 관계를 고치사 감사히 그 사랑에 응답하여 나아가서 동료인간에게 사랑을 베풀도록 하셨다. 물론 그 제도화된 기관들은 그 주변세계에 기독교적  사랑을 증거 하기 위해서 그 고유한, 원래의 책임의식을 일깨우는 과업을 수행하는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이 사명은 성경적 신앙의 교회론적 근본노선에서 실행되는바 봉사에 민감한 복음선포와 지도를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었고 또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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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치유사역의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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