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새벽 일찍 깨어나 엎드려 묵상 기도를 합니다. 주님! 지금껏 살아오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제가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오늘은 호스피스 봉사하러 가는 날이지. 그래 오늘도 내가 할 일이 있고 나를 기다리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작은 이유일거야. 부지런히 준비를 하고 호스피스센터로 향합니다. 아침 예배를 마치고, 주의 사항을 듣고 각자에게 맡겨진 일을 시작합니다. 3층 병실로 가서 봉사자들을 살피고 오늘은 2층 임종실 환우를 돌보기로 했습니다.
202호에 환우의 가족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오늘 봉사자입니다. 혹시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임종이 가까워진 환우의 메마른 입술에 물젖은 거즈를 붙여드리고 간단한 발 마사지를 해드렸습니다. 목욕을 못한 것 같아 가까이 있는 봉사자와 함께 손과 발을 닦아드리면서 환우에게 “물이 따듯하지요.” 가족(따님)과 함께 온몸을 닦아드린 후에 새 옷으로 갈아 입혀 드렸습니다. 그때 따님이 우리 아빠가 눈물을 흘리셨다고 기뻐했습니다. 환우의 귓가에 대고 “박00님께서 지금 가시는 길은 우리가 도와 드릴 수가 없는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아침저녁 예배를 드리면서 만난 그 예수님만 믿고 가셔야 합니다.”
기도를 해드릴까요?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기도를 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주님 지금까지 박00님을 지켜 주시고 이곳까지 인도해주심을 감사합니다. 육신의 고통으로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활짝 열어주시고 행여 악한 영들이 틈타지 못하도록 막아주십시요.. 남은 가족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게 해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게 했습니다.
환우의 모습이 이상했습니다. 원장 선생님이 오시고 가족이 바라보는 가운데 박00님은 잠자는 듯이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함께 있던 가족들이 슬퍼하는 가운데도 따님은 마지막이지만 자녀로서 아버지에게 작은 도리를 했다는 듯 “아까 우리 아빠의 눈물을 보셨지요” 라며 위로를 받고 싶은 눈빛이었습니다. 그 딸을 꼭 안아주면서 등을 다독여 주었습니다.
잠시 후 흐느끼던 따님이 고개를 들며 “오늘 너무 고맙고 행복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함께 하셨다는 것이 믿어졌습니다”라고 감격해했습니다.
모든 뒷마무리가 끝나고 봉사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생각을 했습니다. “주님, 오늘의 일들이 제가 살아가는 작은 이유일까요..” 감사합니다.
2016년 10월에 씀.



메모 : 이융재 사모는 수필가 최건차 목사의 아내로 지난 12월 19일 71세를 일기로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위의 글은 고 이융재 사모가 수원기독호스피스센터에서 16년간 자원봉사자로 수고하면서 떠나기 두 달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글입니다. 고인은 생전에 말기암 환자들을 위해 봉사하며 임종을 거두어 주곤 했는데, 자신이 2016년 12월 1일 담낭암 말기로 바로 그곳에 입원하여 19일 만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참으로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아름다운 삶이었기에 남은 가족과 친지들 그리고 같이 봉사했던 이들은 이럴 수가 라고 믿기지 않은 듯 금방 다시 돌아올 것만 같다고들 하지만. 이 땅에서 다시는 만나 볼 수가 없는 이융재 사모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 지인들에게 애틋한 그리움을 한 아름 안겨주었습니다.                     <최건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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