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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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목회자 양성과정에 있는 신학생들 간에 ‘골품 제도’란 말이 유행했다. 신라 시대 귀족사회가 ‘성골’과 ‘진골’에 따라 그 신분이 나누어지듯이, 한국교회 신학생들도 그 집안의 신앙 배경에 따라 지위가 달라진다는 내용의 자조(自嘲)이다. 신학생들 간에 ‘성골’은 아버지가 목회자로서 노회장이나 총회장을 지냈거나, 또는 아버지로부터 수천명 모이는 교회를 세습 받을 기회가 있는 신학생을 이르는 말이고, ‘진골’은 친가나 처가쪽에 명망있는 목사나 장로가 있어 언제든지 괜찮은 교회에 부임해 갈 수 있는 신학생을 이르는 말이며, ‘잡골’은 집안의 신앙 배경이 없어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가야 할 처지에 있는 신학생을 이르는 말이다. 요즈음은 이를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고 부른다.
◇그런데 기독교 역사에서 목회자로 부름받은 사람은 오랜 훈련과정을 통해 그 직을 수행해 왔다. 소위 명문대를 나와 지식이 많고, 집안의 좋은 신앙적 배경을 가졌다고 해서 어느날 수천명씩 모이는 교회를 맡아 담임목사가 되는 일은 없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사도로 부름받은 후 3년동안 아라비아에서 고뇌하며 기도와 명상과 영성의 훈련을 쌓았다. 바울이 학문이 모자라서 아라비아로 갔는가, 누가 가라고 해서 사막으로 갔는가? 아니다. 그는 당시 유대사회에서 최고의 학벌을 자랑하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을 공부했다. 그는 유대사회를 혼란케 하는 이단을 척결하는 데도 누구보다 열성적이었다. 그는 자신이 ‘이단의 괴수’(예수)를 옹호하고 그의 사도가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스펙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다메섹의 체험으로 그의 소명이 무엇인지 확신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서 강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라고 고백하면서도,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긴다”(롬 11:13)라고 말했다. 이는 전도자로서 고난을 스스로 자초하면서도 그 소명을 깨달은 지도자의 자세이다.
◇똑 같은 시간을 들이고, 똑 같은 교육을 받고도, 흙수저는 ‘개척교회’라는 이름으로 배고픔을 참으며 20~30년 ‘사막의 훈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목회환경을, 오늘날 아버지 잘 만난 금수저는 신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수천명씩 모이는 교회를 꿰찬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사회와 교회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는 사막의 고뇌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세는 40년의 광야훈련을 통해 민족 구원의 지도자가 되었다. 목회자는 뼈를 깍는 고뇌의 시간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그 자질을 인정받을 수 있다. 2015년 통계청 종교인구조사에서 10년 전에 비해 불교의 인구가 많은 수로 줄어든 것은 한국불교에 ‘탁발’이 사라진 것과 무관치 않다. 성직자의 배가 부르면 그 종교의 중흥도 중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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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자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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