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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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서 개들이 저를 향해 짖어대고 있습니다. 어디서든 저는 '이단자'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중상 비방이 저에게 퍼부어지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저의 회중 가운데 있는 적들이 교황파 가운데 있는 공공연한 대적들보다 더욱 잔인하게 저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제네바의 개혁자 칼빈이 오랜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제네바를 성시화 했다고 평가받는 칼빈도 수많은 대적자들에게 둘러 싸여있었다. 칼빈의 대적자들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애국파들로서, 정치적인 이유에서 그에게 반대하였고, 다른 하나는 리버틴이라고 부르는 종교적 자유주의자들이다.
◇애국파는 제네바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영향력이 큰 집안 출신들로서, 제네바 시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 공헌한 사람들이거나 그 집안의 자제들이었다. 그들은 그 정치적 독립을 지키기 위해 제네바에 종교개혁을 도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세력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종교개혁자들의 단정적인 교리(敎理)나 치리(治理)는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개인적인 자유와 기호(嗜好)를 침해하는 모든 조처에 저항하였다. 또 리버틴은 반율법주의자거나 혹은 도덕률 폐기론자들로, 칼빈의 엄격한 도덕적 치리를 극단적으로 반대했다. 오늘날로 말하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영의 자유를 핑계로 옳고 그름의 경계를 혼동하여 육체의 무제한적 방종을 옹호하였다. 그들은 심지어 재물과 여성을 공유하라고 가르쳤으며, 영적인 결혼을 법적인 결혼보다 더 우위에 놓았다. 법적인 결혼은 단지 육욕을 위한 것 뿐이고 구속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리버틴들 중에는 심지어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8)는 축복을 ‘성도의 교제의 교리’라며 남녀의 자유 연애론을 합리화 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들은 성경을 풍유적 은어를 사용하여 엉뚱한 해석을 시도하였으며, 노골적인 무신론과 신성모독적인 반 기독교로 기울어갔다. 그런 제네바를 칼빈은 성경의 진리를 최상의 변호로 투쟁한 결과 새로운 도시로 변모시킬 수 있었다. 그가 수많은 난관을 무릎쓰고 제네바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동력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을 중요시 했을 뿐, 물욕이나 명에욕을 탐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그 도덕적 수준과 영적 수준이 오늘날까지 수 세대동안 그 어떤 기독교 도시보다 더 수준 높은 시민의식과 도덕적이고 물질적인 번영을 구가하는 도시로 만들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사회와 교회의 개혁을 말하는 지도자는 똑 같은 저항에 부딪친다. 사회에도 교회에도 리버틴들은 어디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의 법을 따라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사심 없이 분명히 말한다면, 그 어떤 반 기독교적 리버틴들의 저항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때대로 우리는 탁월한 능력을 갖춘 헌신적인 목회자에게서 이런 지도력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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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틴들의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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