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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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앞으로 120세에 이를 거랍니다. 성경을 보면 아담의 계보가 나오는데, 아담은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고(<창세기> 5:5), 므두셀라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창세기> 5:27)다고 나옵니다. 생명 과학에서 원숭이의 수명이 가장 생육이 발달한 시기를 기준으로 하여 5배의 시기를 더 산다는 실험 결과를 토대로 할 때, 인간은 가장 체력이 왕성한 25살을 기준으로 하여 5배를 더 사는 125년이 평균적인 수명이라는 예측이 나옵니다. 근데 1900년대에는 공해 등 환경의 영향으로 70여 년을 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간의 기대 수명은 생명 과학의 발달로 120년이 될 거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주변의 노인들을 보면 90대인데도 정정하게 활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인들 중에는 황금찬 시인이 100세가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현재 60세인 노인이 앞으로 60년을 더 산다고 볼 때, 인생 계획을 다시 짜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였습니다. 작가의 경우 70세까지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겠다고 계획하였다면, 집필 기간을 90세, 100세까지 연장하여야 할 것입니다. 곧 생명 연장에 대한 새로운 비전이 필요한 것이지요.
지하철 4호선 한성대역 6번 출구에서 내려 600미터를 걸어가면 <방우산장> 조형물이 있습니다. 조형물에는 조지훈(1910-1948)의 시 「낙화」가 시비로 세워져 있고 격자무늬 모양의 조형물과 함께 의자도 몇 개 놓여 있지요. 그는 평소에 지조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지조론은 그의 집안에서 가훈으로 내려오던 것이었습니다. 첫째는 재불차(財不借)로 재물을 빌리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인불차(人不借)로 사람을 빌리지 않으며, 셋째는 문불차(文不借)로 글을 빌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조형물 <방우산장> 옆으로 골목길을 들어가면 그가 살았던 집이 있습니다. 지금은 4층짜리 빌라가 들어서 있지요. 그 집은 그가 생전에 팔았던 집입니다. 그 집을 팔 때의 일화가 있습니다. 대학 교수였지만, 자녀들 등록금 대기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는 재불차(財不借)를 실천하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않고 집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기 위해 매수자와 계약을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는 그 집에서 사는 조건이었지요. 이는 그가 지조론을 얼마나 철저히 실천하였는가를 보여주는 일화지요.
필자는 이 일화에서 알파 에이지 시대를 사는 지혜를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바로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지조(志操)이지요. 지금 이 시간이 영감이 쏟아져 나오는 청년 시절이라 생각하고 멋진 글을 연마하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도 지조 있게 살아가는 덕목일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건강을 잘 관리해야 할 것입니다. 요즘은 헬스장 등에서 체지방이라든가 자기 몸의 상태를 정밀하게 체크할 수 있는 좋은 기계가 많습니다. 지조는 앞으로 3-40년은 청년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이자, 의지입니다. 그리고 지조는 양심에 따라 생동하는 삶을 사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알파 에이지 시대를 사는 가장 멋진 방법은 영원 위에 놓인 존재로서 살아가겠다는 믿음입니다. 영원 위에 놓인 존재라면 지금 이 순간의 언행도 매우 소중한 흔적이 되겠지요. 천체의 흐름은 숫자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긴 시간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 중에서 인간의 수명은 기껏해야 100여 년입니다. 우주의 시간에 비하여 티끌 만큼의 길이를 가진 이 시간에 생각하여야 할 것은 주어진 수명을 얼마나 멋있고 행복하게 살아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의 몫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몸소 희생양이 되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행복입니다. 아버지가 그 자녀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행복입니다. 그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들일 줄 아는 것도 행복입니다. 그러면 이제 신자의 살아가는 목표도 분명해질 것 같습니다.
자, 그럼 구체적으로 신자의 멋진 인생을 설계하여 봅시다. 주일날 교회에 나가서 행복한 표정으로 주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주님이 그 자녀와 함께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들과 즐겁게 교제합니다. 그리고 가정에서는 사랑과 평화로 인간미를 꾸려 갑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신자가 말씀 보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멋을 추구할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세계 선교를 지향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소화할 수 있는 시선과 능력을 허락하소서. 물질적인 가치보다도 영적인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이 행복임을 알게 하소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행복이 가족과 이웃에게 퍼져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행복의 근원이 주님께 있음을 만인이 알게 하소서. 새벽마다 주님이 찾아 오셔서 복을 주실 때 우리가 마중물이 되게 하소서. 주여! 감사드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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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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