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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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의 제자인 제경실의 연구에 의하면 말레이시아 사라왁의 기독교 역사는 네 단계를 통해서 현대에 이르고 있다고 연구하였다. 첫째는 James Brooke과 기독교 선교(1841-1868)의 시대, 둘째는 Charles Johnson Brooke과 기독교 선교(1868-1917)의 시대, 세 번째는 Charles Vyner Brooke과 기독교 선교(1917-1941)시대 그리고 네 번째는 영국식민지 시대의 기독교 선교(1946-1963)이다.
위에서 언급한 네 단계를 한 지면에 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늘은 이러한 네 단계를 이해하는 차원에서 먼저 개괄적인 차원에서 사라왁의 독특한 역사를 기술하고자 한다. 제경실은 사라왁은 독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사라왁 현대사를 보면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왕족이 아닌 이방의 영국인들이 국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린 시기가 있다. 이를 사라왁 왕국 혹은 White Rajah 왕국이라고도 부른다. 화이트 라자 시대는 제임스 부룩(James Brooke)을 시작으로 하여 그의 조카 챨스 존슨 부룩(Charles Johnson Brooke)과 챨스의 아들인 챨스 바이너 부룩(Charles Vyner Brooke)에 이르기 까지 3대에 걸쳐 105년(1841-1946)동안 어어 지는데 부룩가(家)가 집권했던 이후 현재까지 사라왁은 말레이시아 토착 기독교의 본 고장이 되어 왔다. 이슬람을 국교로 삼는 말레이시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왁은 공공연히 ‘기독교 주(The State of Christianity)’라 불리어지고 있다.
사라왁의 선교는 1848년 성공회를 시작으로, 로마 가톨릭은 1881년 그리고 1901년에는 감리교로 이어져 내려갔다. 부룩의 시대라 할 수 있는 1841년부터 세계 제 2차 세계대전시대까지 부룩가(家)는 사라왁을 통치하면서 사라왁 다양한 지역에서의 선교 사역을 허락해 주었다.
하지만 원래 사라왁은 부르나이(Brunei) 술탄(Sultan)의 영토였다. 술탄(Sultan)은 말레이 말로 왕이라는 뜻이다. 부르나이는 보르네오섬 북서해안에 위치한 이슬람국가이며 지리적으로는  동말레이시아 사라왁주안에 둘러싸인 술탄의 국가이다. 풍부한 석유자원으로 인해 국왕인 하사날 볼키아 왕(29대 술탄)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왕으로 일컬어 지고 있으며 부루나이 국민들의 80%이상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사라왁의 지정학적 위치로 볼 때 부루나이 중심부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에 부루나이 술탄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해 사라왁을 다스리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이에 19세기 초 사라왁 지역을 다스릴 수장을 임명하고 쿠칭으로 파견한다. 그당시 사라왁은 지금의 쿠칭(Kuching) 지역을 아우르는 지역을 의미했다. 점차적으로 부룩가가 사라왁의 영토를 넓혀가 림방(Limbang)과 라와스(Lawas)에 이르는 지금의 지역까지 이르게 되었다.
당시 사라왁은 안티몬(Antimony)과 금과 같은 천연자원이 풍부한 지역이었다. 부르나이에서 파견된 수장은 당시 말레이족 지도자로부터 금광 발굴권과 판매권등 대한 모든 권한을 위임받게 된다. 하지만 세금을 터무니 없이 높게 책정하고 육지다약족(Land Dayak)인 비다유(Bidayuh)들을 광산 노동자로 고용하지만 그들에게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등 원주민들을 억압적으로 불공평하게 다스리자 원주민들 사이의 원성이 높아지게 되었고 그들의 신임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사라왁 원주민들은 부르나이 술탄에 의해 임명된 그들의 수장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부르나이 술탄은 사라왁의 민란을 잠재울 다른 이를 보내게 되는데 그 또한 성난 민심을 잠재우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술탄 부르나이에 의해 파견된 두 번째 수장은 빵이란 라자 무다 하씸(Pangiran Raja MudaHashim)이다.  그러한 사라왁의 정치적 혼란기에 제임스 부룩은 사라왁에 도착하게 되었고 그 당시 수장인 빵이란 라자 무다 하심(Pangiran Raja Muda Hashim)은 부룩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이 민란을 제압하면 그에게 사라왁의 수장자리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부룩이 성공적으로 성난 민심을 잠재우게 되고 1941년 빵이란 라자 무다 하심은 부루나이 술탄의 제가(制可) 없이 그를 사라왁의 수장으로 임명한다. 이어서 그 다음해인 1842년 부룩은 직접 부루나이 술탄을 찾아가 왕권을 제가 받게 된다. 이렇게 사라왁의 수장이 된 그와 그의 일가가 105년을 사라왁을 다스리면서 기독교에 미친 영향은 실로 크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말레이시아 사라왁 선교를 준비하는 독자들에게 제자인 제경실의 논문을 인용하여 이 글을 드린다. 앞으로 이어질 글을 통해서 사라왁선교가 꽃이 필 것을 기대한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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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왁 선교 역사의 독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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