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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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한 젊은 사회학과 교수가 가난한 200명의 아이들을 인터뷰한 다음 그들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대학생들을 볼티모어 빈민가로 데려갔다. 빈민들의 상태에 충격을 받은 학생들은 아이들의 90%가 언젠가는 교도소에 가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25년 후 같은 교수가 다른 대학생들에게 과거의 예측 결과가 얼마나 맞았는지 조사하게 했다. 그런데 아이들 가운데 196명이 정상적인 삶을 살았고 4명만 교도소에 갔다. 왜 그렇게 어긋난 예측을 한 것일까? 빈곤층 아이들 중 100명 이상이 그들의 삶에 영감을 준 고등학교 교사 실라 오루크를 기억했다. 오랜 수소문 끝에 70살이 넘은 오루크를 찾아내 아이들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하자 그녀는 당황하며 말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 사람을 변화 시킬 수 있는 것은 사회개혁, 교육개혁, 경제 개혁, 또는 혁명을 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볼셰비키 혁명의 결과물인 소련의 몰락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러기에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만이 인간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 날 그리스도인들 중 하나님을 처음 믿을 때의 순수한 열정이 식어버렸거나 아예 없는 성도들이 많다. 남을 내 가족 내 형제로 보는 따뜻한 시선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오직 남을 비판하는 냉철한 눈빛만이 있다. 왜 그리스도인들은 사랑해야 할까? 먼저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요일3:16) 이제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보자. 그분은 본디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셨다. 인간과는 도무지 비교가 불가능한 거룩한 분이셨다. 그런데 그분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를 십자가에 내어 주셨다. 즉 주님은 자신이 짊어지신 십자가에서 못과 창에 찔리셨다. 더군다나 주님은 우리 대신 저주의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달리셨다. 살갗이 점점이 찢겨진 사이에서 생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저 검붉은 피는 인류의 죄악을 담당하느라고 주님이 흘리신 보혈 이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몽땅 주셨다. 이것이 주님의 크고 넓은 사랑이다. 고로 우리는 주님의 사랑이 필요한 곳을 향해 우리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힘차게 달려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사랑하기로 결정하고 실천할 때 주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다음으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요13:34)고 하셨기 때문이다. 새 계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새 언약의 계명이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은 지키면 좋고 안 지켜도 그만인 정도의 사소한 말씀이 아니라 실로 준수하지 않으면 과거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옛 계명(십계명 출20:3~17)을 지키지 않음으로 심판을 받아 이방의 침입을 받고 나라가 멸망하여 포로 생활을 했던 것처럼 오늘 날 우리들도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제자들의 표지(tradmark)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외모, 학벌, 돈, 지위, 명예, 권력, 큰 저택, 고급 승용차 등으로 자신의 지위를 알리는 표지를 삼지 말고 오히려 낮은 모습으로 음지에 있는 이웃을 섬기는 사랑의 실천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와 천국을 보여 줄 수 있는 진정한 주님의 제자들이 되어야한다. 우리는 인간관계에서도 강제적인 힘은 원칙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무난하다. 무력 앞에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따르게 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상의 복종이나 영합에 불과하다. 마음속에는 반발 불만 원한 시샘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감정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업무 등 일상생활에서 정확한 정보의 유통이 제한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 문제다. 사람들에게는 자신에게 힘을 행사하는 사람에 대해 정보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보다는 그가 좋아하고 그에게 영합하는 말만 골라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윗사람의 기분을 거스르는 비판이나 충고 자신을 평가절하 시킬 수 있는 내용들은 전달하지 않게 된다. 업무상 잘못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사의 강제적 힘을 두려워한 나머지 사실을 보고하지 않게 되면 상사 역시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하게 된다. 결국 잘못이 있어도 즉시 해결되지 못한 채 그대로 진행되므로 이후에 커다란 실패를 자초하게 된다. 장기적으로 볼 때 감정적인 측면이나 업무적인 측면에서 강제적 힘은 될 수 있으면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서 상사나, 가정에서 부모나 학교에서 교사나 교수 등 많은 사람들이 강제적인 힘을 사용하는 것은 아랫사람을 움직이는데 가장 손쉽고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능력이나 지식, 인간적인 매력에 자신이 없는 사람일수록 강제력을 행사한다. 다른 방법으로는 사람을 움직일 수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위협이나 공갈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버려야한다. 우리는 주께 사랑의 은사를 구해야 한다(고전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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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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