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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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김치 한 단을 먹기 좋게 자릅니다. 양파도 적당하게 잘라 국 냄비에 넣고, 참치 캔 하나를 따서 넣어 뜨거운 가스불 위에서 김치와 버무려 볶습니다. 그러면 빠알갛던 김치가 하얗게 변하면서 구수한 냄새를 풍깁니다. 그때 물을 김치와 다른 양념이 가라앉을 만큼 붓고 펄펄 끓입니다. 이십여 분이 지나면 김치찌개가 완성됩니다. 다음은 계란찜입니다. 사기 그릇에 달걀 4개를 깨뜨려 넣고 대파 잘게 썬 것을  새우젓 반 스푼(차 스푼, 나트륨이 적게 들어가도록 고려할 것)과 물 반 대접과 함께 잘게 섞습니다. 그리하여 사기 그릇 안에서 달걀 노른자가 거의 미음처럼 되면 대접이 들어갈 만한 큰 냄비에 물을 약간 부은 후, 그 위에 그릇을 얹어 넣고 7-8분 끓입니다. 그러면 계란찜이 됩니다. 계란말이 요리는 인터넷을 찾아 보면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니까 참고하십시오. 필자가 이런 요리를 하는 것은 퇴직한 남자들 고생시키기 위해서가 아님을 분명히 밝혀 둡니다.
이렇게 요리하고 나면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갑니다. 그나저나 설거지통에 삼 시 세끼 먹고 난 그릇들이 잔뜩 쌓여 있네요. 싱크대 위에도 냄비와 후라이팬이 쌓여 있습니다. 저 정도를 설거지하려면 40분은 족히 걸립니다. 설거지를 하기 전에 욕실 앞에 놓인 빨래들을 세탁기에 넣고 돌립니다. 그래야 아내가 퇴근하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주어진 시간 안에 경제적으로 운용됩니다. 목표는 두 시간 안에 후딱 해치워야 합니다. 앞치마를 두르고 부지런히 설거지를 끝내니, 시계는 여섯 시를 가리키고 있네요. 그 전에는 무얼 했냐고요. 사색하고 글 쓰느라 하루를 거의 보냈지요. 아내에게 글 쓰느라고 집안 일 못했다고 솔직히 말하면 되지 않느냐고요. 이 양반, 모르는 소리 허시네. 글 얘기가 나오면 대부분의 주부들이 글 써서 돈이 되느냐, 밥이 나오느냐며 나가서 돈 벌어 오라고 하는데, 그런 바가지 들을 일을 뭣하러 하지요? 차라리 나 혼자 실컷 사색하고 나서 아내가 퇴근할 즈음 해서 두 시간만 부지런 떨면 될 것을. 아참. 요리하느라고 청소할 시간이 부족하네. 우선 빨래를 건조대에 널고, 대략 테이블 위만 정리해 놓고 청소했다고 뻥쳐야겠다. 눈치를 봐서 아내의 검열만 잘 끝내면, 이삼 일은 청소 안 해도 아내가 눈감아 주지요. 이제 요리까지 해 놓았으니 아내가 집에 들어서서 칭찬해 줄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아,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리네요. “여보. 나 왔어요.” 아, 저 꾀꼬리같은 아내의 목소리(나만 그렇게 생각해도 좋음).
“별 일 없었지요?”
“당근이지.”
아내가 싱크대 앞으로 가서 설거지한 것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청소는 했나요?”
아내가 거실에 먼지가 있는지를 보려고 얼굴을 바닥쪽으로 기울입니다.
“……”
“청소 했냐고요?”
“어? 으으으응”
“먼지가 약간 있는 것도 같고…”
아내가 안방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벼락같이 뛰쳐나옵니다.
“여봇. 화장실 청소를 안 하면 어떡해욧?”
아이쿠.
“아니, 첨지(우리집 똥개) 똥오줌을 시간마다 치우느라 시간이 모자랐어.”
사 실 딸아이가 데려온 첨지를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우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워낙 그놈의 덩치가 커서 수시로 오줌을 질러대는 것도 만만찮습니다. 젊었을 때는 우리 아이들 똥기저귀도 안 갈아 주었었지만, 요즘에 첨지 똥오줌을 뒤처리 안 했다가는 아내한테 혼쭐납니다.
왜 이렇게 사냐고요? 나도 이렇게 사는 걸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어 보고 터득했다고요. 여성이 폐경기를 지나면 남성 호르몬이 많이 나와 남성처럼 거세지는 데 비하여, 남성은 뱃살이 늘어나면서 여성 호르몬이 많이 나와서 가슴에 커다란 젖무덤이 생기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형들에게 물어 보았지요. 형들 왈, “집 안에서는 무조건 여편네 말 들어야 헌다. 그것이 나이 들어 편하게 사는 거여.” “아이고 형님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셨나요?” 이런 얘기가 오갔던 것도 불과 몇 년 전이었습니다. 그러나 남자 나이 예순을 바라보니, 아내의 기가 팍팍 살아나는데 아내 뿐만 아니라 처형과 처제도 마찬가지더라고요. 더구나 처형은 아내에게 “네 남편이 원래 띨띨하잖냐?”하면서 대놓고 구박을 합니다. 어쩌다가 집안의 군기라도 잡을라치면 아내는 “삼식이가 웬 말이 그렇게 많아. 집안 일 하기 싫으면 나가서 돈 벌어 오면 될 거 아니야.” 허 참. 내가 기가 막혀서 매 달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될 만큼 연금을 타 오는 데도 구박이 저렇게 심하네요.
그 러나 어쩌겠어요. 삼십여 년을 같이 살다 보니 정은 들었지. 이 나이에 집 나가서 어디 발 붙일 데라도 있나요? 그래서 꼼짝 없이 가사 앞치마 두르고 가사 도우미 역할을 할 수밖에요. 어디 나만 이런가요? 나이 든 남자들, 모두의 번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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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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