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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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니스의 상인>하면, 중 3 학예회 무대에서, 훗날 성우 구민이 될 구교문(본명)이 포샤를 연기하면서, 그 유명한 대사 “살을 베는 것은 좋지만,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되오. 이 증서에는 살 한 파운드라고만 기록되어 있소!”를 외치자, 다들 환성과 박수로 열광했던 일을 기억하게 된다.
그날 뇌리에 새겨진 극악인 유대인 샤일록의 표상은 오랜 세월 지워지거나 묽어지는 일이 없었다. 적어도 지난해 셰익스피어 서거 300년을 기해서 심심찮게 나돌게 된 자료들을 참고하게 되기까지는 그랬다. 샤일록이 인종차별의 희생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해보며 살아왔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 것이다.     
1막1장,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가 우울하다. 친구 밧사니오가 포샤에게 구혼을 했고, 그 비용을 융통해 주어야 했으나, 모든 재산이 항해중인 선박에 실려 있어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  
2장에서는 벨몬트에서 포샤가 우울해한다. 아버지의 유언 때문에 혼인 상대를 마음대로 정할 수가 없기에.
3장에서야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등장하면서, 크리스천과 유대인이 대립하는 테마를 띠워 올리는데, 안토니오가 밧사니오의 구혼비용을 장만하기 위해 3천 다캇을 꾸어달라고 요청하자, 샤일록은 안토니오의 비위를 맞추면서도 고리대금업을 방해하며 유대인을 차별하는 크리스천 안토니오에 대한 미움을 드러낸다. 결국 기일 안에 3천 다캇을 갚지 못할 경우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잘라낸다는 조건으로 거래는 성사된다.
“밧사니오와 포샤 사이에 펼쳐지는 낭만적 러브스토리”와 “안토니오와 샤일록 사이에서 진행되는 인육재판 법정스토리”. 두 플롯이 병행하며 하나의 주제를 일구어가는 구조이다.
  상반되는 두 풀롯을 연결하는 인물이 밧사니오. 가상도시 벨몬트(아름다운 산이란 뜻)로 포샤를 찾아간 밧사니오는 포샤의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금 은 납 상자 중에서 납 상자를 택하여 포샤를 아내로 맞는다. 그 기쁨의 순간, 안토니오가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위기에 처해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장면은 베니스로 옮겨진다. 포샤도 몰래 베니스로 들어오고.  
4막1장 법정장면. 증오하던 크리스천 안토니오의 생명을 노리는 샤일록. 남장한 변호사 포샤는 일단 샤일록의 주장을 인정하면서도 <신약성서>적 자비로 샤일록을 달래보지만, 샤일록은 <구약성서>적인 정의를 내세우며 완강히 맞서는데.   
그러나 잘 읽어보면, 셰익스피어는 합법적으로 안토니오의 생명을 노리는 샤일록과, 인종차별의 피해자 샤일록의 모습을 동시에 그리고 있다는 낌새를 알아차릴 수 있으리라. 샤일록을 두둔하는 것도 반유대인적인 입장을 지키는 것도 아닐 수 있다는 해석이다. 셰익스피어는 샤일록 또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 그리기에.   
포샤. 법을 방패로 삼는 교조주의적인 샤일록에 맞서, 살 한 파운드는 정확한 무게로 베어야 하고 한 방울의 피도 흘려서는 안 된다며, 계약서의 허점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베니스의 법을 따라 샤일록을 몰아 그에게 베니스인의 목숨을 노린 죄목을 적용하려 드는 포샤는 누구인가.       
또 유대인에게 개종을 요구한 것은 포샤가 아니라 샤일록에게 자비를 보이고자 하는 안토니오의 호의일 수도 있지만, 유대교인을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도록 강요하는 장면은 비인도적이라고 나무라는 평자들도 없지 않다는 현실은  수십 년 전 학예회 무대에서의 감흥과는 상당한 거리를 느끼기 한다.    
1594년 6월, 엘리자베스 1세의 주치의 유대인 로페스가 여왕을 독살하려했다는 죄목으로 처형되는 사건이 유대인에 대한 영국인의 감정을 언짢게 했다. 덩달아 1594년에는, 크리스토프 말로가 쓴 <말타 섬의 유대인>이 인기리에 상연되는데, 유대인 부호가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고명딸의 목숨보다 재산을 더 중하게 여기는 희극. 셰익스피어가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해서 <베니스의 상인>을 창작했을 수도 있으리라.
한편, 당시 런던에는 유대인의 수가 지극히 적었다는 사실에, 유대인 샤일록이 <구약성서> 뿐만 아니라 <신약성서>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더하면, 셰익스피어가 그린 것은 유대인이 아니라, 프로테스턴트인 엘리자벳 1세 치하에서, 연극공연을 싫어하고 가톨릭을 적대시하는 당시의 퓨리턴을 비꼬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도 있다는 데야.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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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일록 재판-'베니스의 상인'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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