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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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의 맨 먼저 창조의 텍스트는 일차적으로 인간에 관해 말하기보다는 인간창조에 관해 말하고 있음에 유의하여야 한다. 인간을 자신의 형상에 따라 만들기로 결심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이었는가?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상응하는 피조물, 그분이 말씀하실 수 있는 피조물, 말씀에 귀 기울이는 피조물을 창조하셨으며, 이를 당신의 형상으로 지으셨다는 데 의미가 있다. 즉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자신과 상응하도록, 다시 말하면,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에서 무엇인가 일어날 수 있도록 관계를 맺어 창조하셨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학적 개념이기 이전에 신(神)학적 개념이다. 먼저 그것은 창조되는 사람에 관해 무엇인가를 말하기 전에, 자기의 형상을 스스로 만들고 그것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 하나님에 관하여 무엇인가를 말하려 함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예컨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것은 ‘사람과 관계를 맺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며, 그 다음에야 ‘하나님과 관계 맺는 인간의 관계’를 말함에 유의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세상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세상을 정복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신 창조자의 뜻을 깨달아 그 뜻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은 던져진 존재”라 했다. 어디에서 어디로 던져졌을까? 인간은 그저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일 뿐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한계이다. 그러나 그 한계로 인해 우리가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가 바로 나와 관계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형상과 관계할 수 있는 지점이 되어야 할 것이며,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의 궁극적 관심이어야 무엇이어야 함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신학자 틸리히(Tillich)에 의하면 신학의 일차적인 기준은 인간으로 하여금 ‘궁극적인 관심’(ultimate concern)을 깆도록 하는 데 있다. 신학은 궁극적인 관심의 대상을 취급하고 이러한 대상을 취급하는 명제만이 신학적이라 한다.
그 궁극적인 관심이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와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이 위대한 계명은 인간 정신의 특수한 기능이 아니라 정신생활의 궁극적이고 정신생활 모든 기능이 이 안에 있는 ‘깊이’(depth)의 차원으로 삶의 가치이라 한다. 여기서 말한 ‘깊이’란 인간 정신생활의 궁극적이고 무조건적이고 무한한 것을 나타내는 공간적 은유이다. 이 궁극적 관심으로 한 사람의 행위는 신앙의 궁극적이고 무제약적인 관심이며 전 인격적이고 인간 정신의 가장 구심적인 삶의 행위라고 한다면 또한 민족이나 국가나 물질이나, 명예 같은 궁극적이지 않는 데에 궁극적인 관심을 기울인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우상 숭배이며, 유한한 신앙적 표현들을 절대시하는 것은 “종교의 악마화”(demonization of religion) 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일상생활의 상대적이고 무상한 경험의 흐름을 초월해서 그 궁극자 하나님을 열어 보이신다. 이렇게 궁극자를 열어 보이시는 신앙, 즉 궁극적 관심에 의해 사로잡힌 상태야 말로 진정한 신앙이요 삶의 가치이다. 궁극적인 관심, 즉 깊이의 차원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 가장 신앙적인 모습이며 인간 정신생활의 기반이며 삶의 근원인 가치가 된다. 그럼으로 삶에서 구원을 추구하는 한 인간존재의 근원을 묻지 않을 수 없기에 인간은 삶의 진가인 신앙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상의 삶을 보면 인간은 실존적으로는 존재의 깊이에서 단절되고 분리된 삶을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는 인간이 죄인이요 병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병원이 잇다는 것은 환자가 있음을 전제 하듯이 신앙이 있다는 것은 인간이 존재의 근원에서 소외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신앙은 소외된 인간실존에 존재의 깊이를 열어 주고 일상의 소음을 넘어 초월자를 계시해 준다. 동시에 그렇게 게시된 것이 바로 신앙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궁극적 대상을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존재자체(being-itself)를 하나님을 존재의 창조적 기초이며 근원이라고 말한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성을 통해 하나님의 모습을 투명하게 보여 주었고 그 제자들은 죽음을 불사한  예수의 인격적 삶 속에서 새로운 존재의 힘을 느끼게 한다. 당신은 ‘궁극적인 관심’으로 삶을 보여 주셨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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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의 시대정신은 궁극적인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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