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제89회 총회장 서기행(徐基行) 목사
2017/05/18 14:0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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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력과 뚝심의 지도력 갖춘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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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무안 출생
서기행(徐基行 1935.10.24) 목사는 전라남도 무안군 몽상면 사천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가 태어난 몽탄면 사천리는 무안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소재지이기도 하고, 사천리 북쪽으로는 전주와 함평이 있어 이곳엔 이미 미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비교적 기독교 복음을 접할 기회가 잦은 곳이었다. 이는 기행 소년에게는 일찌기 서구문물에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무안 지역에 복음이 전해지기 전에는 광주(光州)와 목포(木浦), 영암(靈岩), 함평(咸平)을 비롯 1900년대 초부터 여러 곳에 이미 교회가 설립되었고, 1910년대에 이르러 비금, 금성, 해제, 망운, 청계를 비롯 면소재지마다 교회가 설립이 되었다. 그리고 조금 늦었지만 서기행 소년이 살고 있는 동탄면에도 장로교회가 설립되었다.
무안과 신안 지역에는 당시 성결교 출신 문준경 여전도사의 맹렬한 전도활동으로 100개의 섬마다 문전도사의 선풍적이고도 희생적인 헌신으로 예수를 모르는 섬 사람이 없을 정도로 복음의 바람이 지역 고을마다 세차게 불어 닥쳤던 것이다.
기행 소년이 살았던 고향 동탄 지역만 해도 면소재지인 사천리에 몽탄중앙교회, 명산리에는 명산성결교회와 명산중앙교회, 양장리에도 양장성결교회가 설립되었고, 학산리에는 장로교회가 설립되었다.
오늘처럼 산업과 농업이 발달되지 못하고 교육시설의 미비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여건 속에서도 기행 소년에겐 이미 복음의 씨앗이 마음밭에 떨어져 믿음의 싻이 뿌리를 내려 미래에 대한 소망이 불타고 있었다.
아울러 청년의 열정과 배움의 갈망이 예수를 알게된 기행 청년을 가만두지 않았다. 선교사를 통해 전해 받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생명이 그의 젊음을 불태웠고 주님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열망은  신앙생활과 교회봉사를 통해 점점 활화산처럼 속으로 그칠줄 모르고 타오르고 있었다.

서울 이태원 대성교회서 목회
사단법인 찬송가공회 회장 역임
해외선교에 많은 관심 선교사 지원
은퇴후에도 교단 내외서 열정 봉사

그가 태어난 1930년대의 조선은 일제의 학정으로 조선청년들에겐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절이었다. 학업을 마음놓고 할만한 형편이 되지 못했고, 주위의 똑똑한 젊은이들은 일본군대로 징집이 되어가고 젊은 소녀들은 취직을 미끼로 하여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는 시대였다.
방방곡곡마다 세워지는 소학교나 중학교들도 조선인들을 위한 교육보다는 일본인 자녀들을 위한 교육기관이었고, 우리 조선의 자녀들은 전시에 필요한 물자공급의 심부름꾼으로 이리저리 내몰려 시달려야만 했다.
이러한 판국에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없었으나 성경을 배우고, 교회를 통한 신앙생활이 서기행 청년에겐 유일의 소망이었고 위안이었다. 그는 기독교에 입신하고 세례를 받은 그날 주님의 소명을 받았다.
그는 대한의 청년이면 모두가 가야 하는 군(軍)에 입대해 국방의 의무를 마친 후  바로 서울에 있는 총회신학교에 진학했다. 처음 부름 받았을 때 주님을 위해 헌신하기로 다짐한 그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1962년 총회신학교(오늘의 총신대신학대학원 전신)를 마치고 전도사와 강도사를 거친 후, 1964년 대한예수교장로회 목포노회에서 목사장립을 받았다.
전도사와 강도사로 2년 간은 김제 송지교회에서 목회사역을 감당하였고, 목사 안수를 받은 후 1965년엔 목포 동문교회를 거쳐 1967년 9월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있는 대성교회(大成敎會)에 부임하여 2005년 원로목사로 추대되기까지 목회했다.
서 목사가 부임할 당시 대성교회는 오늘의 예장합동측 교단 소속이 아니고, 대한예수교장로회 호헌측 총회 소속 교회였다. 서기행 목사가 부임한 후 교회 공식의결 기구인 공동의회에서 그 해 연말 호헌총회를 탈퇴하기로 결의하고, 한국장로교회의 모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경기노회에 가입하였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대성교회를 경기노회 소속으로 복귀시킨 후, 부임하던 그 해 11월 연건평 84평 2층 예배당을 신축함으로 교인들의 마음을 한곳으로 모으는데 힘썼다. 그리고 1969년 6월 17일 노회의 허락으로 위임식을 가졌다.
다시 1970년 9월 10일 다시 연건평 340평 4층 예배당 건축 공사를 착공하였다. 1977년 4월엔 이태원동 301-1의 땅 154평을 매입, 교회지경을 확장하였다. 1981년 5월 24일 목사관을 연건평 70평으로 완공하였으며, 같은 해에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서후리에 3,500평 수양관 대지를 매입해 이곳에 1983년 7월 30일 수양관 별관 건물(식당 및 주거방)을 완공하였고, 같은해 11월 10일 김무열 장로 장립이 있었다.
1985년 6월 7일 처음으로 필리핀에 배상호 목사를 1대 선교사로 파송하여 해외선교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또 1985년 11월 9일 하태초, 박광수, 허기식, 조남성, 장기서 등 5명의 장로 장립식을 거행하였다.
1989년 4월 25일 교회설립 35주년 기념식과 서기행 목사 성역 23주년 기념 감사예배를 드렸고, 같은해 이태원동에 아파트 1동과 수양관 가건물(본당의 105평)을 신축하였다.
1989년 10월 17일 필리핀 선교지에 선교대지 및 건물을 구입하고 복음선교교회를 설립했다. 1990년 4월 4일 지청진 장로 취임이 있었고, 11월 3일엔 조만제 장로 원로장로 추대와 이순노 장정수 집사 장립이 있었다.
이어 1992년 11월 9일 이태원동 303-25번지를 매입, 이듬해 1993년 9월 11일 지금의 대성전 건축 기공예배(연건평 1200평, 지하 2층, 지상 5층)를 드리고, 1994년 4월 24일 교회설립 40주년 기념주일 감사예배를 드렸다.
1994년 10월 31일, 서기행 목사가 총신운영이사회 이사장에 취임했다.
1996년 7월 21일엔 제3차 아프리카 케냐에 이종도 목사를 선교사로 파송 지원하였다. 1997년 9월 11일 서기행 목사 근속 30주년 기념예배와 동시 미국 Belhaven 대학으로부터 명예신학박사(D.D.) 학위수여 감사예배를 함께 드렸다.
1999년 8월 1일 제4차로 호주시드니 고강완 선교사를 본교회에서 후원하고, 2000년 12월 14일 교회 가까운 지하철 녹사평역과 자매결연을 맺고 선교의 지역 확대를 기하기로 하였다.
2001년 5월 16일 서기행 목사는 한국찬송가협의회 회장으로, 다시 5월 17일엔 한국찬송가공회 회장(19차)으로 피선되어 교계를 위해 봉사하기도 하였다.
2003년 9월 23일 제88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교단 부총회장에 당선되었고, 이듬해 2004년 9월 21일에서 24일까지 서울 충현교회에서 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제89회 총회에서 교단의 수장(首長) 자리인 총회장에 당선되었다.
서기행 목사는 목사로 준비한 몇년을 제외하고는 서울에 있는 대성교회라는 한 곳에서 자기의 사역에 최선을 다한 목자였다. 그의 강직함과 정의감과 지도력은 총회장을 역임하고 은퇴한 후에도 교단의 원로로, 고문으로 열정을 다하고 있다.
총회장의 직임을 다 한 후 2005년 10월 24일 대성교회는 그를 원로목사로 추대하고 그의 교회를 위한 수고에 예를 갖추는 아름다움을 표하였다.
그가 재임했던 제89회 총회의 중요 결의안을 몇가지 살펴보면, ① 총회임원 선거규정을 개정하기로 하다. ② 상비부장 총신 운영 이사장 기독신문 이사장, 사장, 총회세계선교회 이사장을 제비뽑기로 하기로 가결하다. ③ 목회자 생계비 최저생활비선은 정부 발표선으로 하고 노회와 총회가 적극 지원하기로 하다. ④ 개혁 개정판 성경은 공적예배에서 사용하지 않기로 하다. ⑤ 중보기도란 용어 대신 이웃을 위한 기도란 용어를 사용하기로 하다. ⑥ 회의 용어 중 ‘자벽’을 지명으로, ‘지시위원’을 광고위원으로 하기로 수정하다.
서기행 목사의 슬하에는 2남1녀가 있으며 두 아들은 각각 개인사업에 종사하며 교회를 섬기고 있고, 사위 문석호 박사는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 교수로 섬기고 있다.
서기행 목사는 부임 당시 개척교회나 다름없던 작은 교회를 대형교회로 부흥성장시켰으며, 교단 내의 지도력과 봉사를 감당해낸 저력있는 뚝심이 그의 삶과 목회에 기초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그의 목회철학을 보면 교회 안의 성장과 대외적(해외선교) 성장의 조화를 기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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