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고장난 시계

                                   임 만 호

지리산 산정을
오르는 길목
초가삼간 산(山)집 하나

노부부 옛 살림
네발 밥상 사발 몇 개
산나물 푸성귀로
봄을 차려놓고
가끔은 맞는 벽시계를 쳐다본다

“저놈의 시계는 고장도 잘 나는 디
우리네 세월은 고장도 없네.”

오늘 하루 가는 세월
산그늘 가져오고
호롱불 밝히면
노부부 저녁상에
세월도 같이 간다

주름진 얼굴들을
미소로 쳐다볼 때
진달래는 소리없이
꽃물이 든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 지리산 산정을 오르는 길목 우거의 노부부가 시적 주체가 되었다, 시를 읽는 순간 따듯한 정감과 아름다운 비감을 불러 일으킨다.
네발 밥상 앞에 소박한 푸성귀로 밥상을 차려 놓고 앉아 있는 모습은 적막하지만 행복한 시적 구도다. “저 놈의 시계는 고장도 잘 나는 디 우리네 세월은 고장도 없네.” -절창이다.
 인공 지능이 인간을 넘보는 듯 아찔한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살아 가고 있다, 어쩌면 신의 영역을 기웃거리고 있는 듯, 위기감과 불쾌감을 불러오고 있지만 피조물이 만든 어떤 사물도 불완전 하며 영속성이 없고  고장이 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창조주가 만들어낸 우주의 법칙은 고장도 나지 않고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노부부는 알고 있다.
그러나 어쩌랴 푸념이라도 해야 맘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 봄날은 아름답게 꽃물을 들이고 있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시간의 흐름이다. 벽시계는 시간을 멈추어 놓고서도 태연스레 시치미를 떼고 있다. 능청스런 정경이다, 시간이 멈추어 한 몇 년 쯤 사람들은 여전히 젊고 나뭇잎도 푸른빛으로 남아 있다면 환상적인 일일 테지만, 노부부는 서로 주름진 얼굴을 연민으로 바라보며 꽃물 드는 봄날을 보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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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고장난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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