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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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초기 유프라테스 강 동쪽에 본거지를 둔 동방 기독교는 인도와 시리아와 이란과 메소포타미아와 이라크와 아르메니아와 터키와 중앙아시아 등지에 널리 퍼졌으나, 오랜 기간 박해를 받았다. 처음에는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하는 사산조 페르시아로부터 조직적인 박해를 받았다. 샤푸르 2세는 조로아스터교의 광신적인 종교재판관들을 내세워 19만여 명의 기독교인을 학살했다. 또 예루살렘에서도 약 9만명의 기독교인을 죽였다  524년에는 아라비아의 남쪽 예멘의 함야르 왕국에서 모든 성직자와 수녀들과 수사들을 교회당에 몰아넣고 산 채로 불태워 죽이는 끔직한 만행이 벌어졌으며, 나머지 기독교인들은 모두 목을 베어 죽였다. 그 때 4,700명이 순교하고 1,300명의 아이들은 노예로 팔렸다.
◇630년 마호메트가 이슬람을 일으킨 후에는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다. 기독교인들은 무슬림 복장을 할 수 없었으며, 공공장소에서는 가슴과 등에 노란 헝겁조각을 붙여서 기독교인 표시를 해야 했다. 이 법을 위반하면 죽든지, 가족이 노예로 팔리든지, 아니면 무슬림이 돼야 했다. 850년 칼리프 무타와킬(Mutawakkil, 847-861)은 기독교인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차별을 강화했다. 기독교인들은 노란 옷을 걸치고 머리에는 2개의 특수한 단추 같은 것을 꽂고 다녀야 했으며, 여자들도 노란 베일로 얼굴을 감추고 다녀야 했다. 또 기독교인들은 금요일에 시장에 출입할 수 없었으며, 자녀들은 학교에서 아랍어를 배울 수 없도록 했다.
◇14세기 말 티무르는 가는 곳마다 교회당을 파괴하고 기독교인들을 학살했다. 사마르칸트에서는 기독교인 해골과 진흙으로 성을 쌓았다. 그로인해 중앙아시아 전역에서 기독교가 사라졌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도 동방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는 끊이지 않았다. 오스만 제국은 1894~1896년에 30만명의 무고한 아르메니아 기독교인을 학살했고, 1908년 제1차 세계대전 중에 160~180먼명을 학살했다. 또 1864년 7월에는 쿠르드인들이 약 2만명의 기독교인들을 무차별 살해하고 죽은 사람들의 귀를 잘라 자신들의 지도자 바드르 칸에게 보냈으며, 젊은 여자들은 노예로 팔거나 무슬림 족장들에게 진상했다.  또 1915년 4월에는 터키 내무장관 탈라트 파샤의 명령으로 기독교인 200만명이 희생됐다. 이 집단학살은 터키 정부가 계획한 것으로, 무슬림 토착민들은 살해된 기독교인들의 재산을 나누어 가졌다.
◇동방 기독교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복음서·십자가 표지·세례·성찬이다. 그들은 이것을 기독교의 네 기둥이라고 한다. 성례전은 세례와 성찬만을 인정하고 성찬은 빵과 포도주 두 가지를 다 준다. 십자가는 부활 후의 ‘빈’ 십자기이지 고난당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화체설을 부인하고, 죽은 사람들을 위한 미사, 향의 사용, 성인들과 성모 마리아에게 대한 기도를 금한다. 그 교회당에는 성상(聖像)과 성화(聖畵)가 없고, 십자가에 못박혀 매달린 형상도 없다. 뿐만 아니라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지극히 성경적 신앙을 가진 형제들이 이렇게 오랜기간 박해를 받아왔음에도, 서방의  어느 교회도 그들을 도우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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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교회에 대한 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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