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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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그 양식이 구약 성경의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부르시는 소명기사의 양식과 비슷하다. 본문은 대선지자로 오신 예수께서 제자들을 새 언약의 선지지자로 임명하시는 기사라고 할 수 있다(손석태. 성령세례 다시 해석한다 참조)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시며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자기 자신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며, 그 천지창조의 권세를 가진 주께서 주신 마지막 당부의 말씀이 “너희는 모든 민족에게 가서 그들을 제자 삼아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Disciple Maker가 되라는 것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 주신 명령이기 때문에 “모든 민족으로 제자 삼아라”는 말씀은 제자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절대적인 명령이다. 제자를 양성하는 일은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것이 아니라 반드시 복종해야 할 명령이다. 이 명령은 믿음이 좋은 자들에게 주신 것이 아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하나님으로 경배하는 자들에게 주신 것이지만 그 가운데는 예수님에 대하여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다(16).  
“모든 민족”이라고 번역하는 헬라어 “에드노스”라는 말은 “민족”(nat ion)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사람”(people)이라는 의미로도 많이 쓰인다. 따라서 너희는 모든 사람에게 가서 그들을 제자 삼아라고 번역한다면 우리가 제자 삼을 대상이 더 분명해진다. 모든 혈연이나 지연이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제자를 삼을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이나 족속이라고 번역하면 사람들을 집단적인 단위로 생각하게 되어, 제자 삼을 대상이 물 건너 멀리 있는 대륙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마가복음을 보면 “너희는 온 세상에 다니며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막 16:15)라고 명하고 있다. 여기서 “온 세상에 ”라고 번역하고 있는  헬라어 “코스모스”라는 말은 Uni verse우주라는 말이다. 우주도 그냥  우주가 아니라 “온 우주” 즉 “코스모스 합판타”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우리가 가야 할 곳은 가까운 이웃 집으로부터 시작하여 이 지구상 아프리카 오지는 물론 더 나아가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 화성, 금성, 더 나아가 이 태양계를 벗어나 가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로마서 8장에 보면 피조물이 고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 그들이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곳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뜻대로 하나님의 아들들을 섬기는 일을 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마가복음의 예수님 말씀과 바울의 이 회복 사상은 서로  맥이 통하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은 이 땅에 속한 피조물 만이 아니다. 저 우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이 그 대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하늘에 있는 자나 땅에 있는 자나 모든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해야 하는 것이다. 우선 내 이웃 사람에게 먼저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자는 어떻게 삼는 것인가? 본문의 주 동사는 물론 제자 삼으라는 “마데튜오”의 부정과거 명령형인 “마데튜사테” 이다. 그리고 이를 수식하는 단어로 “가라”, “세례를 주라”“가르치라”는 3개의 분사형이 따르고 있다. 말하자면 가서, 세례를 주고, 가르침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것이다. 여기서 가르치는 일은 예수께서 명령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teaching them to observe all that I have commanded you) 가르치라는 목적을 나타내는 부정사가 부가되고 있다. 개역성경에서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번역하고 있는 데 그보다는 “지키도록 가르치라”는 번역이 더 원문에 가깝다.
첫째는 가라는 말씀인데 이는 향방없이 발길 닿는 대로 가라는 말씀은 아니다. 오다 가다 만난 사람 붙들고 제자 삼겠다고 덤벼들라는 말씀은 아니다. 헬라어 “포류오마이”라는 말은 어떤 사명이나 목적을 가지고 간다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마 2:20; 8:9).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밤이 맞도록 기도하신 후 제자들을 불러 세우셨다고 했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다면 먼저 우리는 마음에 두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이고, 그를 마음에 두고 만 있어서는 제자가 될 리 없고, 발걸음을 떼서 찾아 가서 만나라는 의미가 있는 말씀이다. 목적이 분명해야 하고, 확실한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세례를 주라는 것이다. 세례란 예식이다. 물을 머리에 뿌리거나 물속에 잠겼다가 나오는 의식으로, 자신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한 존재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이제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존재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아무에게나 허용된 것이 아니고 먼저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과 부활을 믿고, 그를 주와 그리스도 받아 들이고 모시겠다는 고백이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예수 믿고, 기독교인이 되겠다는 결단과 믿음이 있어야 한다. 죄인들은 세례를 받음으로 기독교 신자가 되고, 예수께서 머리가 되는 교회의 지체가 되어 그리스도와 연합한 존재가 된다. 마치 우리 몸의 각 지체들이 근육과 혈관과 신경과 경락이 서로 연결되어 한 몸을 이룬 것 같이, 우리는 성령으로 서로 연결된 지체들인 것이다. 교회는 이 점에 대해서 힘주어 가르치지 않고 다만 세례를 주면서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의무적으로 내도록 지도한다. 물론 이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평신도들은 일단 세례 받고 나면 세례 받기 전과 다른 점이 별로 없다.  세례의 의미는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물로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령으로 인치신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물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임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예수 믿고 물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임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물세례를 받을 때 성령 세례를 받는 것이다.  성령세례는 왜 받는가? 성령세례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말씀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인증하는 권위와 능력을 받는 것이다. 성령세례는 중생도 아니고, 중생한 자가 부가해서 받는 제2의 특별한 영적 축복(Second Blessing)도 아니다. 예수를 믿는 자가 신자가 되었음을 선언하고, 새언약의 선지자됨을 하나님께서 인증하는 예식이다. 그동안 교회에서는 세례와 선지자의 직분을 연계해서 가르치지를 않았다 (손석태 저, 성령 세례 다시 해석한다 참조). 성령세례에 대한 이해가 잘 못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례 교인이 반드시 전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해야한다는 것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례 줄 때 그가 예수님의 제자, 곧 전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선지자의 직분을 받은 자라는 것을 확실하게 주지시키고, 세례 받은 자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셋째는 예수께서 명하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야 한다. 개역성경은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지키도록 가르치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지키도록” 이라는 말은 목적도 되지만 보다 교육의 책임성과 신실성과 완벽성을 요구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예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제자들과 동행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제자들 가운데는 예수님의 부활 자체에 대하여 의심하는 자들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자들에게 제자 삼아라른 사명을 주시고 예수께서는 그들과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주신다. 보혜사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전할 그의 제자들과 함께 하시며, 위로하고 도와 주시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본문을 선교사로 지원하는 사람들에게나 해외 선교사업을 후원하기 위한 설교 본문으로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이 말씀을 예수믿고 세례받은 모든 사랑에게 적용되는 말씀이다. 우리 각 개인은 물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물세례를 받음과 동시에 성례세례를 받아 새언약의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받았음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선지자답게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며 새로운 제자를 양성하는 사명를 감당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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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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