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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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르느와르(Augute Renoir,1841~1919)의 열정의 이야기이다. 그는 노년에 다리와 양손이 마비되는 악성 관절염으로 고생했다. 심지어 붓을 잡는 것조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이런 악조건 속에서 결코 그림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그림에 대한 열정은 더욱 뜨거워 갔다. 어느 날 절친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가 그를 방문했다. 그는 휠체어에 앉아 있거나 누워있을 줄로 알았던 르느와르가 손에 연필을 붕대로 감은 채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 놀랐다. 연필로 하나하나 그려갈 때마다 르느와르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지만 그는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마티스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친구에게 물었다. ‘오, 르느와르, 이렇게 고통을 받으면서 까지 그림을 그리다니... 이제 그만 쉴 생각은 없나?’ 그러자 르느와르가 대답했다. ‘고통은 순간이지만 그림의 아름다움은 영원히 남는다내’ 이처럼 열정은 인생에서 우선 그 개인의 삶을 역동적으로 만든다. 열정은 내면에서 발산되어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숨길 수 없다. 그래서 일단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행동으로 이끈다. 그리고 행동을 열심히 정열적으로 하게 된다. 그러니 매사에 힘이 넘치고 최선을 다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만족할 수밖에 없고 행복을 덤으로 찾아오게 한다.
열정은 나이에 상관없이 그토록 자신의 삶을 멋지게 이끌 뿐 아니라 타인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전염성이 있기 때문이다. 열정이란 단어의 열자는 한자로 ‘따뜻함, 뜨거움’을 의미한다. 즉 열정은 힘이 넘치는 뜨거운 마음이다. 그래서 그 뜨거움은 전염될 수밖에 없다. 열정의 사람을 보자. 한국 전쟁에서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을 당시 더글러스 맥아더의 나이는 무려 70세였다. 그는 매일 시 한 편을 암송 했다. 영국 시인 새무얼 울만이 쓴 ‘청춘’ 이란 시였다. ‘진정한 청춘이란 젊은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젊은 정신 속에 있다. 장미 빛 볼, 앵두 같은 입술, 유연한 신체, 이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풍부한 상상력, 타오르는 정열, 이런 것이다. 펑펑 솟아오르는 샘물처럼 정신은 오늘도 신선한가? 생동감이 넘치는가? 용기 없는 정신 속에 청춘은 존재 하지 않는다. 위대한 사랑을 위해 드러내는 용기와 모험 속에 청춘은 존재한다. 용기 없는 20대라면 그는 이미 노인, 용기 있는 60대라면 그는 한창 청춘이다’ 새무얼 울만이 ‘청춘’ 이란 시를 지은 것은 그의 나이 78살 때라고 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다. 단지 나이를 먹는다고 늙은 것은 아니다. 꿈을 버릴 때 우리는 늙는다. 인생은 마음가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약관의 나이에도 비관에 빠지면 이미 늙은 것이다. 나이가 여든이라도 삶에서 희망을 본다면 여전히 젊은 것이다. 우리의 내면에는 젊음을 창출해 내는 강력한 힘이 도사리고 있다. 열정, 패기, 도전이라는 단어는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나 붙잡기만 하면 삶의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 피터드리커는 95세가 넘은 나이에도 왕성한 연구와 저술 활동을 했다. 늙은 것은 일종의 습관이다. 늙는 것을 생각하고 늙은 사람처럼 말하고 늙은 것처럼 행동하면 정말 몸과 마음의 노화가 진행 된다.
나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일에 열정을 가져야 하나? 성경의 인물 바울처럼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바울은 건강이 좋지 않았다. 매 맞음으로 인한 상처, 또 육체의 가시, 육체의 고통이 떠날 날이 없었다. 이러한 그라면 이제 전도사역을 마무리하고 평안한 생활을 선택해도 누구 하나 나무랄 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비전을 알았기에 더 할 일이 있고 그것을 이루고 싶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군데군데 상처로, 오랜 여독으로, 또 성도들의 오해와 근심으로, 심리적으로 지쳐 있었을 텐데도 그 고난이 두렵지 않는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안정된 생활보다 불안정한 생활을 택하였다.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이방인의 사도로 세계를 누비겠다고 했다. 마침내 그는 당시의 심장부인 로마에 까지 복음을 전했고 전승에 의하면 그가 가기를 소원했고 당시의 세계의 끝이라고 여겨진 서바나 곧 스페인에 복음을 전했다(롬 15:21). 쉬고 싶고 낙담되는 상황이 없지 않을 텐데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복음을 전함으로 끝내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역을 이루는 주역이 되었다. 그의 인생의 말년(빌 1:9)에 이르러서까지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하였다. 이는 모두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명확히 알았기에 가능하였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육신의 피로도 감정의 기복도 이 부르심을 이해한 바울의 심정을 식히지 못했다.
이처럼 자신의 계획을 발견하는 사람은 역동적인 삶 즉 열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 하나님을 진정 사랑한다면 그 비전을 떠나 살 수 없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을 재확인하면서 역동적이며 활기찬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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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인 사람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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