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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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70~80대의 영화 팬이라면, 1952년, 오손 웰스가 감독 주연한 흑백영화 <오셀로>를 기억할 터. 얼마 전 한 TV 방송이 오래 전의 감동을 되새기게 해주어서 고마웠다.   
  장례행렬로 시작하는 영화 <오셀로>에는 주검이 된 무어인 오셀로(오손 웰스)와 데스데모나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다. 이야고는 옆으로 움직이는 장례행렬을 가로질러 수직으로 드리운 새장 안에 갇혀 흔들리는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이야고는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장례행렬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본다.      
셰익스피어 연극에서 악역들은 대부분 회개하고 죽음을 맞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여기 이야고에게는 회개도 없고 죽음도 없다. 단지 악역일 뿐.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살해한 후, 이야고의 간계에 놀아나면서, 죄 없는 아내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러나 이야고는 오셀로의 칼을 맞고도 죽지 않는다. 살아 있다고는 하나,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인 것은 그가 처형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오셀로처럼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고 깨끗하게 죽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가 갇혀있는 새장 안에서는 모든 것이 투명한 상태인지라,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다른 인격으로 변장할 수도 없다. 교묘히 선과 악 사이를 오가며, 우직한 오셀로를 파멸로 몰아갈 수는 있었지만, 이제 자신은 공중에 매달려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고 있다.    
이야고, 그는 오셀로와는 달리 백인이었고 당시의 강대국 베네치아 공화국의 떳떳한 시민이었지만, 굴러들어온 무어인 오셀로의 부하여야 했고, 바라던 부관의 자리마저도 경쟁자 캐시오에게 빼앗기고 만다. 이야고를 시기의 화신으로 그린 셰익스피어의 솜씨가 다시 주목을 받는 것은, 이야고의 간교한 수법이 시대를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현실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고는 오셀로의 질투를 부추기기 위해서 “질투심을 조심하세요.” 하는 경구를 가지고 다가선다. “질투는 무서운 거랍니다. / 푸른 눈을 가진 괴물이지요. / 그렇다마다요, 이놈은 사람의 마음을 먹이로 하여 / 괴롭히며 가지고 논답니다.”
경고하는 척 은근히 질투의 불씨를 심어준다. 한 인간을 질투에 사로잡히게 하려고, 먼저 질투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 가를 철저하게 인식하게 하는 수법. 질투는 이제 그의 불안을 타고 자기증식을 시작하고.  
“증거를 보이라!” 질투의 화신이 된 오셀로는 아내가 부정을 저지른 증거를 내놓으라며 이야고의 가슴팍을 움켜잡고 소리친다. 이야고는 오셀로에게 그 손수건을 먹이로 던져 주며 읊조린다. “공기처럼 가벼운 것이라 할지라도 질투에 취해있는 자에게는 성경 말씀처럼 무거운 것이 되는 걸.”
마침내 오셀로는 한 장의 손수건 때문에 아내의 목을 조르게 되는데... 이야고가 오셀로에게 건네준 정보는 정보이기 보다는 오셀로의 질투를 부추기는 먹이가 된다.
이야고가 발신한 정보는 제 발로 돌아다니며 발신자가 보게 하는  정보만을 보게 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증거라 여겼던 손수건은 오셀로의 눈을 가리는 수건이 되고.  
그는 상전 오셀로를 미워하면서도 충실한 부하처럼 처세했다. 캐시어에게는 충실한 친구인 척 다가가서는 오셀로의 질투를 부추기는 도구로 이용하는가 하면, 로드리고에게는 데스데모나와 결혼시켜 주겠다며 금전을 뜯어낸다. 상대방이 바라는 모습으로 변신하는 장기를 가진 이야고는 상대의 욕망을 부추겨서 깊은 나락으로 떠밀어버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선과 악은, 이야고의 손바닥에서 때를 묻히며 굴러가는 사이, 그 다름이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두루뭉술해지는 것이었다. 사랑은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심어 받은 오셀로가, 어느 틈엔가 사랑은 사랑이 아니란 확신을 가지게 되었듯이, 서로 대립되는 개념의 의미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오손 웰스의 <오셀로>에서,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니게 된 이야고의 모습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모습일 지도 모른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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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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