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1-1.jpg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 이야기의 중심 주인공을 누구로 설정하 느냐에 따라 성경의 이해와 해석과 적용이 달라진다. 따라서 성경을 읽는 사람이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성경 이야기의 감독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성경 이야기 가운데 등장하 는 인물이나 주인공은 감독이신 하나님께서 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이거나 대리인, 혹은 행위자 (Agent)이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주인공을 지나치게 의식하다 보면 감 독자나 제작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경우를 보게 된다. 누가복음 5장은 사람 낚는 어부, 예수께서 고기 낚는 어부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시는 사건이다. 이 사건은 예수께서 감독자이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를 잡게 해주셨을 때, 즉석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이 죄인임을 시인했다. 그리고 주님께서 자기를 떠나 달라는 청을 한다. 흔히 이 경우 우리들 가운데는 베드로가 예수께 불손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그 불손한 태도에 대한 용서를 빈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꽤 많다. 베드로는 나름대로 갈릴리 바다의 물길과 물고기들의 생태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 것 같다. 예수께서 그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수고하였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으나,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그물을 내리겠습니다.”(눅 5:5)라고 대답했다. 베드로의 이 말에는 은근히 “어부인 우리가 밤새도록 노력하였어도 고기를 못 잡았는데 목수인 당신이 어업에 대해서 뭐 알아요. 그러나 선생님 말씀이니 한번 해보지요.”하고 마지못해 그물을 내려 그의 체면이나 세워 주겠다는 투로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말씀대로 그물을 내렸을 때 상상을 초월한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자기보다 훨씬 물고기를 잘 잡은 위인을 미처 알아보지 못한 자신을 책하고,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자신을 죄인이라고 낮추고, 떠나주실 것을 구했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 본문을 보면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자신의 복음 사역에 있어서 편의를 제공해달라고 부탁하고, 그를 도와 준 베드로에게 감사의 표시로 물고기를 잡아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몰려 들었을 때 예수께서는 호숫가에 계셨다. 말하자면 예수께서는 일찍부터 고기잡이를 갔다가 돌아와서 그물을 씻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배 두 척을 눈여겨 보고 계신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접근하여 베드로의 배에 오르시어 육지에서 떼어주기를 청하셨다. 예수께서는 거기에 있는 두 척의 배 가운데 베드로의 배를 지목하시고, 베드로의 배에 올라 그의 도움을 청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그의 배를 선택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물고기를 잡게 해주심으로 그가 보통 인간이 아닌 초자연적인 존재, 말하자면 신적인 존재,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성경을 잘 해석하고 가르치는 선생, 병든 자기의 장모를 치료해 준 의사, 어느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대중적인 인기와 리더쉽을 가진 지도자, 그리고 넓고 깊은 호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자, 그래서 자기와는 도저히 비교가 될 수 없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초인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베드로는 그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자기 앞에 계신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면 베드로는 하나님 앞에 서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출애굽 후 여호와 하나님과 시내 산에서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고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시고 그들과 함께 약속의 땅으로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기 위하여 간청하는 가운데 여 호와께 그의 영광(“카보드” )을 보여 달라고 요구한다(출 33:18). 여호와께서는 이 말을 모 세가 자신의 참 모습을 보여 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나를 보고서는 살 사람이 없으니,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다.”(20)라고 대답하신다. 따라서 칠십인역(LXX)은 여기서 “주의 영광을 보여주소서”를 “주님 자신을 보여주소서”라고 읽고 있다. 이때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바위틈에 두시고 하나님께서 지나가실 때에 그의 손으로 모세를 덮으셔서 모세는 여호와의 뒷모습만 볼 수 있게 해주신다. 모세를 살리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을 산에서 만나고 온 모세의 얼굴은 여호와의 영광을 반사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의 얼굴을 보기조차도 힘들어 모세는 수건으로 그의 얼굴을 가려야 했다(출 34:29-35).
이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 볼 때, 베드로는 지금 “선생”이 아닌 “주님”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한 말은 자기의 불손한 행동에 대한 죄의 고백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당신은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말로,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예수 께서는 베드로를 선택하시고, 그의 신적 권능을 과시하여 베드로가 현재 하나님을 직접 대면 하고 있음을 알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이시기에 당당하게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고, 베드로도 또한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확신했었기 때문에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 었을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하여 자기를 떠나라고 말씀하였지만 오히려 예수께서는 그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며, “이제부터 너는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분명 물고기를 낚는 베드로에게 앞으로는 사람을 낚는 사람이 되게 해주시겠다는 뜻일 것이다. 물고기를 낚는 일은 베드로의 생업이다. 물고기를 낚아서 그와 그 가족들이 먹기도 하고, 팔기도 할 것이다. 자기가 살기 위해서 물고기를 낚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낚는 일은 먹고 사는 일과 같을 수는 없다.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들을 바다에 빠진 무리로 간주하시고, 낚시꾼이 물고기를 낚시로 낚아 올리듯이, 베드로를 사람을 낚아 올리는 어부로 비유하는 것이다. 이 일은 생업과 달리 사람을 살리는 일이 될 것이다. 생업은 사람이 생활을 하기 위하여 하는 일이겠지만 사람을 낚아 살리는 일은 분명 사명이 없이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예수님처럼 이른 아침에 바닷가에 나와야 고기를 낚든, 사람을 낚든, 낚시질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택하시고, 베드로에게 자신의 신적 정체성을 계시하시고, 그에게 사람을 살리는 사명인으로 살도록 인생의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시고, 새로운 인생길의 전기를 마련해 주신다. 베드로는 이제 예수님을 통하여 사람 낚는 법을 배우고, 먹고 살기 위한 생활인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명인으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실상 이날 아침에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베드로라는 대어를 낚으신 것이다. 예수님 자신이 사람 낚는 어부가 되신 것이다.
태그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 63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