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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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성도의 신앙의 표본이다. 따라서 목사님들이 사석에 만나서 하는 이야기는 “십일조 신앙이 진짜 신앙이다”라고들 말한다. 그만큼 십일조 신앙이 쉽지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성직자의 삶이 항상 그러려니 하고 살지만 은퇴한 나에게는 그래도 젊어서 조금은 더 준비를 해야 했던 것이 아닌가 할 정도의 생각들이 머리를 스칠 때가 많다. 가끔 매체를 통해서 어느 목사는 재산을 얼마나 축적 했다느니, 아니면 교회 재산을 얼마나 가져 갔다느니 하는 기사를 볼 때에는 내 자신이 무능한 목사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요즈음 조그만 개척교회를 해 보다 보니 더욱 물질에 대한 필요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오늘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글의 논제와 함께 다루어 보고자 한다. 필자에게는 세 명의 딸과 한명의 아들이 있다. 이들 중에 첫째가 되는 딸이 몇 년 전에 참으로 좋은 신랑을 만나서 시집을 갔다. 그리고 지금은 아들과 딸을 출산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손자와 손녀를 안아 보면서 그동안 숨막히게만 달려온 나날들을 보상 받는 느낌도 든다.
몇일 전 방금 소개한 큰 딸과 사위를 비롯한 손자와 손녀 그리고 필자의 자녀들 몇 명이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사를 하기 전에 시집을 간 큰 딸이 나에게 왔다. 그리고 봉투 하나를 전달하면서 “아빠 이것은 십일조예요” 하는 것이다. 내용은 이렇다. 큰 딸 부부가 섬기는 교회에 그동안 십일조를 드렸는데 집이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된 후 교회를 정하지 못한 관계로 십일조를 드릴 기회를 잃어 버렸다고 했다. 때마침 아빠와 저녁 식사를 하게 됨으로 십일조를 아빠의 개척 교회에 드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딸이 건낸 십일조의 봉투를 받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십일조야 말로 가장 귀한 십일조라고 명명하고 싶었다. 사실 평생 선교사로만 살아온 나는 경제적인 관념이 별로 없다. 그랬기 때문에 딸이 시집을 간다고 할 때도 단돈 500만원을 마련해 주면서도 아빠로서 해야할 의무를 다한 것처럼 생각했었다. 그러나 여기 저기에서 들려오는 세속적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아빠의 무능함이 얼마나 자녀의 가슴을 아프게 했는가를 헤아리기도 하였다.
필자는 오늘도 무더운 더위와 싸워 가면서 선교학 강의를 위한 교안을 작성하고 있다. 초대교회 이후 수 없이 많은 선교사님들의 삶을 다루면서 공통된 주제어가 있다. 이는 선교사의 삶은 청빈한 삶이 었다는 것이다. 선교사 바울도 두벌 옷을 가지지 말 것을 교훈하였다. 이러한 교훈이 현대선교로 이어지면서 믿음의 선교(faith mission)를 낳게 만들었다. 그러나 언제 부터인가 교회 속에는 세속주의 물결이 넘실대면서 청빈한 삶은 곧 처지는 믿음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성경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는가? 공중에 나는 새도 마리 둘 곳이 있고, 평지에 있는 들풀도 머물 곳이 있지만 그는 머리둘 곳이 없다고 말씀 하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청빈한 삶이야 말로 오늘날 세계의 모든 입들이 그 분을 칭송하게 만들게 됨을 알 수 있다.
이야기의 주제인 십일조로 돌아가 보자. 구약의 말라기서를 보면 십일조에 대한 분명한 지침이 나와 있다. “사람들이 어찌하여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 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 물이라. ...만군의 야훼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아둘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8-10)”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오늘 필자의 자녀에게 십일조의 믿음을 주심 하나님께 깊이 감사한다. 그리고 그 믿음이 더욱 깊어지기를 기도한다. 돌아오는 주일날 강대상 위에 자녀가 헌금한 십일조를 올려 놓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싶다. 그리고 마음껏 축복 기도를 해 주고 싶다. 마치 야곱이 요셉을 축복해 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는 봉투 속에 들어 있는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사위와 딸이 갖고 있는 신앙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쩜 적은 봉투 하나가 나를 이렇게 감격하게 만든 것을 보면 나도 이제 나이가 많이 들었 는것 같다. 그러나 자녀들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비록 짧은 삶을 살고 있지만 그렇게 헛되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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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귀한 십일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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