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1-1.jpg
 우리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성경의 순서와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천주교도들이 사용하는 성경의 순서는 다르다. 우리 개신교도들은 구약성경을 흔히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라고 말하지만 히브리어 성경, “타나크”는 창세기부터 역대하라고 말한다. 말라기서가 구약성경의 마지막책이 아니다. 말라기는 성경의 어느 부분에도 언급된 이름이 아니고 우리에게 알려진 이름도 아니기 때문에 학자들 간에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나의 사자”(my messenger)라는 의미의 보통명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전통적으로 말라기는 선지자의 이름으로 그 의미가 “여호와는 나의 사자이시다” 혹은 “나의 사자”라고 알려져 왔으며, 그의 저작 연대도 에스라나 느헤미야 이전의 주전 475년에서 450 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말라기서는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의 논쟁으로 구성된 특이한 양식의 책이다.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 하십니까?” 혹은 “어찌하여 너희가 ... 하느냐?” 라는 여호와의 문책성 질문과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 하였습니까?” 라는 이스라엘의 대응 질문과 각각 그들의 대답이 핵심을 이루는 책이다. 여호와께서 그의 선지자 말라기를 통하여 지적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으로 경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에서가 형이지만 그의 동생, 이스라엘을 그의 백성으로 선택한 것이 가장 큰 사랑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이스라엘도 여호와를 사랑하며 공경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멸시한 백성이다.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하고, 여호와의 율법을 무시한 것이다. 율법을 무시한 것은 바로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무시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은 것은 그들이 여호와를 경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2:5).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언약을 충성스럽게 지키는 것이 여호와의 백성으로서의 도리이다.
그러나 그들은 언약을 배반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혼 문제이다.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은 이혼을 생각 없이 하면서, 이 역겨운 일을 하는 이들의 제물을 돌아보지 않으시는 여호와를 향하여 “무엇 때문입니까?”(2:14)하고 대들지만 실상 이들은 결혼의 의미를 깊이 모르는 것 같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시고, 하나님 앞에서 결혼했으므로, 하나님께서 두 사람 사이에 맺은 언약의 증인이 되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는 너와 네가 젊어서 얻은 네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시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네가 언약을 맺고 맞아들인 아내이며 짝인데 너는 그 여자를 배신하였다”(14)고 말씀하신다. 결혼은 두 사람이 만나는 순간부터 결혼 예식을 마치고,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는 전 과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다. 고대 근동 세계에서 결혼이란 계약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당사자는 반드시 계약서를 쓰도록 법으로 규정했다. 계약서를 쓰지 않으면 그 관계는 결혼으로 인정되지도 않았으며 법적 구속력도 없었다 (하무라비 법전 128조, 에수눈나 법전 27조). 성경에서도 이혼을 할 때 이혼증서를 써주도록 규정하고 있다(신 24:1-4; 참조 마 19:7, 막 10:4). 선지자 예레미야는 시내 산에서 여호와와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을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결혼 예식으로 이해하고 해석한다(렘 31:32). 말하자면 여호와와 이스라엘은 출애굽 후 시내 산에서 결혼 관계를 맺는데, 이 때 하나님께서 돌판에 써주신 계명은 일종의 결혼 계약서로 주신 것이다. 따라서 말라기서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이혼의 문제는 남녀부부 당사자만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언약에 대한 모독이고 배신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젊어서 얻은 아내를 배신하지 마라”(15)고 명하신다. 그리고 계속하여 “나는 이혼하는 것과 자기 옷으로 포악을 가리우는 자를 미워한다.”(16)고 말씀하신다. 한글 개역개정은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한다” 고 번역하고, 한글 새번역은 “나는 이혼하는 것을 미워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아내를 학대하는 것도 나는 미워한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바른 성경이나 개역개정은 다같이 옷으로 포악이나 학대를 은닉하고 감춘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으며, 새번역은 아예 “옷”이라는 말을 빼버렸다. 그러나 히브리어 본문의 문자적인 번역은 “그가 그의 옷위에 폭력을 덮었다”이다. ESV, JPS, NAS는 히브리어 본문을 따라 “covers his garment with violence”로 번역하고 있으나 NET “and the one who is guilty of violence”(그라고 폭력의 범죄가 있는 사람)으로, NIV는 “does the violence to the one he should protect”(보호해야 할 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자)라고 번역한다. KJV은 한글 성경처럼 “one covers violence with his garment”으로 번역한다. 이들을 살펴보면 KJV이나 바른성경, 개역개정 등은 분명 오역이라고 해야 할 것 같고, NET, NIV는 해석적인 번역이다.
그렇다면 이혼과 관련하여 “옷 위에 폭력을 덮었다.” 혹은 “옷을 폭력으로 덮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고대 근동의 아라비아나 이스라엘에서는 남자가 여자에게 청혼할 때에 자기 옷을 여자에게 던지는 풍습이 있었다 (손석태 『여호와, 이스라엘의 남편』 46). 성경에서 “옷을 덮는다” (룻 3:9; 겔 16:8)는 말은 결혼을 청하는 말에, “옷을 벗긴다”(렘 13:25-27; 겔 16:37, 39; 23:10, 26; 호 2:3)는 말은 이혼의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레위기 18장에서 다루고 있는 성범죄에 대한 말로 “하체를 범하다”고 번역하는 히브리어 표현은 다같이 “벌거벗음을 드러내다”는 말을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옷이란 결혼과 이혼을 표현하는 데 사용하는 은유적인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남자가 여자에게 옷을 던져 청혼을 했으면, 언약하고 가정을 꾸미고 그에게 의식주를 공급하며 사랑해할 터인데, 이혼을 하는 것은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혼은 남편이 아내에게 행하는 폭력이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이혼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고, 부부 당사자들의 언약 관계를 깨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역겨운 일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2:11).
젊은 사람들의 이혼율의 증가는 말할 것도 없고, 젊은 날에 결혼하여 함께 고생하며 가정을 이루고 자식들을 기른 부부들의 황혼 이혼이 증가하는 이 시대에, 이혼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며, 하나님이 보실 때 역겨운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진심으로 자기 심령을 지켜서 너희가 젊어서 얻은 아내를 배신하지 마라”(2:15)는 말씀을 새겨 들어야 한다.
태그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 65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