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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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세상 돌아가는 글을 쓰고 싶다. 때 마침 조선일보의 인터넷 신문을 통해서 늙어 가는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과 며느리를 보면서 마음을 나타낸 글을 읽었다. 제목은 ‘쿨한 시어머니 되려했더니, 잊혀지고 마네요’ 라는 글이다. 내용은 이렇다. “잔소리를 해야 할 이유는 백가지이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해봐야 얻을 게 없기 때문이죠. 말로 가르쳐 알아들을 사람은 그냥 둬도 언젠가 깨우칩니다. 스스로 터득하지 못하는 사람은 말로 가르쳤어도 알아듣지 못했을 겁니다. 부모가 할 일은 오직 기다려주는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 기다림을 끝내 돌아봐주지 않을지라도 후회하거나, 노여워하지도 말고... 생전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 한번 안 하시던 우리 시어머니. 덕분에 저는 시집살이가 뭔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 제가 ‘고부 갈등’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된 것은 친정 언니를 통해서였죠. 어려서부터 맏며느리감이라 소리 듣고 자라더니, 실제로도 맏이한테 시집가서 집안 대소사를 온몸으로 감당해낸 큰 언니.
그러면서도 형제들과도 의좋게 잘 지내서 과연 맏이는 하늘이 낸다는 소리를 들어온 그 언니가 어찌된 일인지 본인의 며느리와는 영 뜻이 맞지를 않았지요. 잘 키운 아들에게 걸맞는 좋은 며느리를 봐 놓고도,  언니의 마음에는 서운함과 답답함만 쌓여가는 듯 하더군요. 다른 데 가서는 못 하는 말, 오직 너니까 털어놓는다며 언니는 내게 하소연하곤 했는데, 그 얘기만 들으면 질부의 행동에 문제가 있는 듯도 했습니다.
그 사이 저도 며느리를 봤지요. 언니의 시행착오를 교훈삼아, 저는 출발부터 잘해보고 싶었습니다. 상처나 부담 없는 쿨한 관계이고 싶었습니다. 그러자면 제가 기대를 접고 잔소리를 말아야 한다는 걸 알았지요. 그래서 굳은 의지로, 장님에 벙어리로 몇 년을 살았습니다. 그래도 자식인데 잔소리 할 일이 왜 없었겠어요. 하지만, 모르는 척 했습니다.
소식 없으면 잊고 살았고, 전화 오면 반겨 맞았습니다.  2세 소식이 무척 기다려지지만 한 번도 사정을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자식의 도움이 절실할 때도 어지간하면 혼자 해결했지요.
아들 며느리 효도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원만한 고부관계, 내 아들 마음의 평화, 그리고 최소한 나쁜 시어머니 소리는 안 듣는다는 나의 자존심이었기에...
그러나 저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내게 남은 것이라곤 오직 그 손바닥만한 평화와, 종지만한 원만함이 아닌가 싶어서요. 평화롭고 원만하면 무엇하나요? 화목함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제게는 가족이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찾지 않으니 자식들이 저를 잊었나 봅니다. 몇 달째 연락이 없기가 쉽네요. 궁금하지만 제 쪽에서 전화를 하는 것도 어째 어렵습니다.
몇 년 전 환갑 때도 날짜를 놓치고, 하필이면 무척 바쁜 시즌이라는 변명과 함께 온라인 송금으로 퉁친 아이들이기에... 환갑인 줄은 알았는지 예년보다 금액이 좀 많더군요. 그럴 때도 가만 있어 놓고 이제 와서 도리니 뭐니 가르치려 든다는 것도 쉽지는 않죠. 나이가 드니 자꾸 마음이 약해집니다. 이러다 내가 아파 입원이라도 하게 된들, 자식이 알고 달려올까? 세상을 뜬다 한들, 저희들이 애통해 할까?
하기야 자식이 애통해한다고 죽다 살아날 것도 아니니 상관없지요. 다만, 저는 자식들의 인성이 걱정스럽습니다. 저래 가지고 사회생활은 잘 하는지, 어디 가서 매정하다, 본데 없다 소리는 안 듣는지...하지만 아들도 며느리도 회사에서는 승승장구인 모양이니 쓸데없는 걱정은 내려놓아야겠지요. 저는 제 자신의 어리석음만 걱정하면 됩니다. 내가 편히 대해 주면, 저희들도 내 마음 알아주겠지 생각했던 것, 참 어리석었습니다. 존중해주니, 최소한의 형식마저 무너지네요.
그러나 후회는 안합니다. 저런 아이들에게 애초에 기대를 걸고 가르치려 들었더라면, 지금쯤은 갈등이 심각했을 게 뻔하니까요. 안 그러길 잘했죠.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는, 외롭고 허무한 평화가 백번 낫네요.“
자식을 끝까지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글을 통해서 성경적 가정관을 생각해 본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 하리라(엡 6:2-3)”. 보모 공경이 점점 희석되어져 가는 세태 속에서 가정 선교의 필요성을 생각해 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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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선교를 위한 순수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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