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 본 고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예장연)가 지난 9월 28일 서울 종로5가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개최한 ‘예장연 특별포럼’에서 발표된 글의 주요부분을 발췌 편집한 것이다.                                                   -편집자 주

k-aa.jpg
 
1. 개혁의 시기성
우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우리 교회의 관심을 한국교회의 개혁에 집중하고 이런 시기에 우리의 역량을 개혁에 모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교회는 가진 것이 없고 누릴 것이 없었을 때 오히려 신앙적인 역동성이 있었고, 사회적으로 신뢰와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많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누리게 되면서 한국교회는 영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제 한국교회는 교회의 본질, 신앙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한국교회 영성과 도덕성의 보다 구체적 회복을 위해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종교개혁은 교회가 교회답지 못했고, 성직자가 성직자답지 못했고, 교인이 교인답지 못했던 중세 가톨릭교회를 바로 세우려는 갱신운동이요 신앙운동이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 수많은 목회자와 교인들이 있으면서 세상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변화시키지 못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지 못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은 중세기 가톨릭교회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기에 종교개혁의 정신을 되찾아야 한다.
제2의 종교개혁이 한국교회에서 일어나려면 믿음을 단순히 복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전략시킨, 은총보다 자신의 공로에 의지하려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고 있는 교회, 목회자, 교인의 현실에 대한 통렬한 회개운동이 먼저 있어야 한다. 또 전통주의, 권위주의, 파벌주의, 물질주의에 물들어 있는 비신앙적인 틀을 깨뜨리고 하나님보다 이 세상적인 것(돈, 권력, 지위, 명예)을 더 사랑하고, 기독교인다운 도덕적 삶을 살지 못하고, 서로 하나 되는 공동체적인 관계를 갖지 못했던 모습을 청산하고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종교개혁의 목표는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오늘의 한국교회는 이런 원리를 따르고 있는 것인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여러 사람들의 논의가 있으나 여기서는 중요한 몇 가지를 제시한다.

2. 개교회주의의 극복
한국 기독교는 16-17세기 종교개혁 시대에 로마 가톨릭교회의 잘못된 신학과 전승을 고치기 위해 투쟁한 프로테스탄트 가운데 개혁교회(Reformed Church)라고 불리우던 장로교가 주류를 이룬다.
개혁교회는 중세에 개혁이 완성된 교회가 아니라, 오늘도 계속 역사 안에서 ‘개혁하는 교회’를 뜻한다. 이 개혁교회는 중세에 수백만명에 이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생명과 재산을 받쳐 이룬 역사적 교회이다.
그런데 이 개혁교회가 한국에서는 종교권력화 하여 교권과 물욕과 명예욕을 탐하고 있다. 이는 개혁교회 원리에서 타락한 교회의 모습이다. 이제 겨우 그 역사가 100여년이 조금 넘어 예배당 하나 지을 만한 여유가 생겼다 싶으니까 지도자들이 사심(私心)을 드러내고 세속적 이익을 위해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종교의 이름으로 세속적 욕심을 드러나게 되면 그 교회는 오래지 않아 망하는 길로 갈 수 밖에 없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가?
① 교회론의 변질
사도성을 계승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것이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있든지 모두가 ‘하나’이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4-6).
그런데 일부 한국교회는 ‘내 교회’라는 개교회주의를 내세운다. 이러한 개교회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면 한국 기독교는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서의 구실을 할 수가 없다.
개교회주의는 무엇보다도 교회 재정운영의 폐쇄성으로 인해 지체의식이 없어지고, 교회와 교회 간에, 목회자와 목회자 간에 동료의식을 악화시킨다. 결국 자기 능력껏 살아가는 ‘무당네’와 크게 다르지 않게 된다.
특히 노회(Presbytery)를 중심으로 하는 장로교회는 어떤 경우에도 개교회주의가 존재할 수 없다. 그럼에도 한국교회에는 장로교회도 ‘독립교회’ 운운하며 개교회주의가 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그렇게 운영되는 교회가 많이 있다. 여기에서의 탈피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② 기복주의의 확산
오늘날 한국교회의 강단은 무속적 기복주의에 점령당한 상태이다. 한국의 종교는 모두 기복화(祈福化) 되고 있다고 할 정도이다. 기독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종교가 있는 곳에는 기복행위가 있다. 기복은 자식과 재물과 부귀와 출세를 위하여 빌고, 병을 고치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한 모든 소시민적 행위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복(祈福)과 종교(宗敎)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현상이다. 더욱이 기복주의(祈福主義)는 성경의 축복신앙(祝福信仰)과는 거리가 먼 사상이다.
기복은 모두 현실적인 삶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기복행위는 언제나 현세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태도를 갖는다. 따라서 기복주의자들은 구체적인 욕망들이 충족되었을 때에 행복해진다. 심지어 기복주의적 목회자는 돈벌이가 잘 되어야 행복하다. 그러나 복음은 다르다. 자기중심이 아니라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삶이다. 현세적이고 이기적인 태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한 이타적인 삶의 태도를 갖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복과 복음은 완전히 다르다. 기복주의로는 참된 그리스도인을 양육할 수 없다.
③ 물량적 성공주의의 제패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은 두 말 할 필요 없이 세속주의로서 교회의 적이다. 옛 말에 유전가사귀(有錢可事鬼) 라는 말이 있다. “돈이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뜻이다. 세속적 성공주의자들은 교회도 돈이 있으면 하나님도 ‘영광스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배당을 화려하게 짓고, 교육관을 크게 늘리고, 산속에는 수양관을 세우고, 교인들을 몰고 다니며 성지순례다, 무슨 잔치다 하며 폼나게 목회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목회는 ‘소명’에 따른 헌신이다. 소명보다 ‘목회 비전’을 앞세우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은 “목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소명’이고,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욕망’이다”라고 말했다.
성경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딤전 6:10)고 한 말은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진리이다. 교인이 근면 성실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삶을 살면 영적 축복뿐 아니라 물질적 축복도 함께 온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때 축복받는 물질은 그 개인이나 개교회가 잘 먹고 잘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그것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사회적 연관성을 가지고 청지기적 삶을 살라는 것이다.

3. 설교의 개혁과 성찰
교회는 설교를 통하여 일어서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한다. 한국교회의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가 바른 복음이며 바른 설교인지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
종교개혁은 교회의 탐욕과 성직자의 타락에서 왔다. 당시 교회는 세속 권력자들과 끊임없는 결탁을 통해 부동산을 늘려갔고, 베드로 대성당을 지을 돈이 모자라자 면죄부를 만드는 등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돈을 긁어모았다. 교회가 탐욕으로 가득 차면 절대 바른 복음,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말씀 대신 인간의 생각이 가득한 말씀이 선포된다. 그 결과 탐욕을 점점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도리어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게 된다.
종교개혁기의 대부분의 사제들이 윤리·도덕적으로 타락해 교인들은 그들로부터 배울 것이 없어져 그들을 불신하기에 이르렀다. 교황들은 정치권력과 결탁했고, 추악한 성직매매가 빈번했다. 이런 일은 현재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반면교사이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목회자들의 타락과 돈에 대한 과도한 욕심, 권력과 명예 중독은 결국 하나님의 법을 불순종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소명에 관심이 없고 탐심과 쾌락이 주를 이루다 보니, 사제들이 성경에 무지해졌다. 르네상스의 영향으로 인문주의 사상이 번져가면서, 평신도들은 예전과 달리 사제의 무지를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교회의 교황과 사제들의 가르침이 성경과 무관함을 알게 된 이들은 자연스럽게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일어나 것이다.
종교개혁 전야의 모습은 오늘날 한국교회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목사들의 성경과 하나님 뜻에 대한 무지는 부끄러운 교회를 만들 것이고, 마침내 교회의 개혁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목회자들은 성경과 좋은 책 읽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성경을 이해하는 일에 진력해야 한다. 교회는 이를 위해 기도하고 도와야 한다. 한국교회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우상숭배인 탐욕을 버리고, 목사들부터 거룩한 삶을 살며, 기도와 말씀으로 충만해질 때 성도들은 각성하고 변화돼, 그들이 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종교개혁500주년기념 예장연 특별포럼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